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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다이제스트

<벌레들>(김애란)

작성자글사람|작성시간13.06.25|조회수371 목록 댓글 0

<벌레들>(김애란)

 다이제스트:  김유리 

 
  장미빌라는 낮은 언덕을 깎아 만든 절벽 위에 지어졌다. 지하와 옥탑을 합해 육 층, 대략 삼십여 가구가 산다. 싱크대 위에 책받침만한 창문을 제외하고, 실내에 난 창은 현관 맞은편에 난 것 하나뿐이다. 창문은 한쪽 벽면의 반을 차지할 만큼 크다. 이곳으로 이사 올 결심을 한 것도 사실 그 때문이었다. 방을 빼주기로 한 날짜는 다가오고, 조건에 맞는 집은 없어 초조하던 차에 장미빌라를 발견했다. 이 동네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됐다는 건 이사 후 한 달이 지나서야 알았다. 
  장미빌라와 A구역의 경계, 그러니까 절벽 아래 부분에는 잡초가 무성하다. 입주 후세 달 쯤 지나서였을까? 창가에 놓인 수납장 위로 손가락만한 애벌레가 기어가는 걸 보고 기겁한 적이 있다. 나는 그것들이 도대체 어디를 통해 들어오는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이 방에 신을 신고 들어왔다. 401호 내부는 거의 썩어가고 있었다. 고무장을 낀 채 고농축 세제로 만들어진 스펀지를 이용해 바닥을 닦았다. 일을 끝낸 후, 창가에 서서 물을 마셨다. 어느새 다가온 남편이 뒤에서 나를 안았다. 
  “나무네?” 
  “어디?” 
  남편이 손가락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 저 집 마당에 있잖아. 애초에 심었을 땐 작았을 텐데. 봐봐, 마당을 다 차지하고 이웃집 지붕까지 덮었잖아. 나무가 집보다 크다 야.” 
  도심 한복판 홀로 서 있는 나무의 검은 실루엣이 바람을 따라 신성하고 아름답게 흔들렸다. 
  달이 차고 배가 부풀수록 공사 속도는 박차를 가했다. 내 몸은 미세하게 차근차근, 또 어느 때는 급격하게 변해갔다. 손가락에 살이 찌자 결혼반지가 손에 맞지 않았다. 창가, 수납장 위 상자에 반지를 넣어 두었다. 바닥에 보증서가 깔린, 파란색 벨벳 상자였다.
남편은 늦게까지 오지 않았다. 전화를 하자,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기야, 뉴스 봤어? 초코조코칩에서 구더기가 나왔대.” 
  “....못 와?” 
  남편은 주춤거리며 말했다. 
  “어? 아니야. 가. 갈 수 있어. 상황 봐서 최대한 빨리 들어갈게.” 
  남편은 오지 않았다. 10시가 되도, 11시가 지나도 남편은 오지 않았다. 
  가을바람에 바삭해진 이불에 몸을 감았다.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났다. 창가에서 뭔가 부스럭대는 소리였다.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긴장한 채 엉거주춤 상체를 일으켰다. 창가 쪽 방충망이 약하게 , 규칙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곧 경악하고 말았다. 웬 커다란 애벌레가 안으로 들어오려는 듯 부지런히 머리를 찧고 있던 것이다. ‘어떻게 할까?’ 욕실에서 곰팡이 제거용 세제를 들고 나왔다. 상체를 한껏 뒤로 젖힌 채 애벌레를 향해 소독액을 분사했다. 애벌레는 용을 쓰다 기운이 빠지는지 흐느적댔다. 그리곤 얼마 후 고개를 떨구며 싱겁게 죽어버렸다, 씽크대 서랍에서 나무젓가락을 한 벌 꺼내왔다. 그리고 젓가락이 막 그것의 털에 닿은 순간, 애벌레가 벌떡 고개를 들었다. 애벌레는 상체를 세워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아악!” 
  나는 두 팔을 휘저으며 뒤로 물러섰다. 동시에 허둥대는 내 손짓에 치어 수납장 위의 반지 케이스도 함께 낙하하고 말았다. 몇 달 전부터 손에 안 맞는 결혼반지를 넣어둔, 파란색 벨벳 상자였다.
  A구역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흙 속에서 비릿하고 퀴퀴한 냄새가 났다. 비위가 상해 입으로 숨을 쉬었다. 가슴을 진정시키는 주문을 외웠다. ‘곧 풀숲이 나온다. 상자를 줍는다. 여기서 빠져나간다.’ 그렇게 막, 나무의 뿌리 부분을 지나가는 참이었다. 나는 곧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엄청난 양의 곤충들이, 벌레들이, 유충들이 떼를 지어 이동하고 있는 모습. 
  벌레의 이동은 나무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나무는 자궁이 적출된 여자처럼 헤프게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충격은 곧 공포로 바뀌었다. 본능적으로 집에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랫도리에서 극렬한 통증이 전해졌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도와주세요.” 
  소리는 허공 위로 아스라이 사라졌다. 아랫도리에서 칼로 에는 듯한 고통이 전해졌다. 멀리 보이는 장미빌라는, 모텔과 교회는, 아파트는 여전히 평화로워 보였고, 나는 이 출산이 성공적일 수 있을지 정말이지 확신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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