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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다이제스트

<호텔 선인장>(에쿠니 가오리)

작성자글사람|작성시간13.02.14|조회수98 목록 댓글 0

<호텔 선인장>(에쿠니 가오리)

 다이제스트: 이사라


  어느 시가 동쪽 변두리에 오래된 아파트가 있었습니다. 낡고 허름한 회색 석조 건물이었습니다. 막상 안으로 들어서니 제법 선선한 게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호텔 선인장’, 이것이 이 아파트의 이름이었습니다. 호텔이 아니라 아파트인데도 그런 이름이었습니다. 호텔 선인장에는 아주 작은 마당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예의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배를 깔고 누워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상당한 멋쟁이로 방탕하기 그지없었으나, 지금은 낮잠만 자는 늙은 고양이일 뿐입니다. 
  아파트는 3층 건물로, 3층 한구석에 ‘모자’, 2층 한구석에 ‘오이’, 그리고 1층 한구석에는 숫자 ‘2’가 살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은 밤이 되면 어김없이 오이의 방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술을 마시거나 음악을 들으며 함께 어울렸습니다. 

  모자는 도박꾼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세 사람은 나란히 경마장에 나갔습니다. 
  “좋은 날이야. 경마하기에 딱 좋겠어.”
  뭔가를 시작할 때면 언제나 가슴 설레는 오이입니다.
  “난 어쩐지……조금 긴장됩니다.”
  계속해서 2가 말합니다.
  “규칙도 잘 모르고, 내기에는 영 익숙하지 못해서 말이죠.”

  경마장에 도착한 세 사람은 표를 사서 자리에 앉았습니다. 경마장 건물은 약간 더러움이 탄, 분홍색 콘크리트로 되어 있었습니다.
  “좋지?”
  모자가 말했습니다.
  그것은 2의 눈에는 ‘마치, 학교처럼’, 오이의 눈에는 ‘쥐가 있을 듯한 분위기’, 그리고 모자의 눈에는 ‘무척 사랑스럽게’ 보였습니다.

  따가닥 따가닥 따가닥!
  말 열네 마리가 앞다투어 달려나갑니다. 

  “안 돼!”
  오이가 절규합니다. 

  결국, 아무도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레이스에 ‘모든 것을 걸었던’ 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박의 세계에서는 왕왕 일어나는 시련입니다. 

  돌아올 버스비를 챙겨둔 사람은 2뿐이었습니다. 오이는 오히려 좋은 기회라며 아파트까지 천천히 달려서 돌아왔습니다. 오이는 ‘조깅은 유산소 운동이기 때문에, 오이의 과육을 죄어주고 몸 속 수분을 깨끗하게 만들어 준다.’고 했습니다. 
  난처한 쪽은 모자입니다. 차비는 없었고, 그렇다고 조깅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2는, 모자를 쓰고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하면 한 사람 몫의 요금으로 둘이 함께 돌아올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 날 저녁, 그 해 처음 작은 눈송이가 잿빛하늘에서 내려오는 참이었습니다.

  아파트가 헐린다는, 충격적인 내용의 벽보가 현관홀에 붙은 것은 겨울의 문턱에 들어섰을 때였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단호하게 맞서야 해!” 
  다 읽고 나서 반발한 것은 2였습니다. 그러나 모자도 오이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모자는 생각 중이었고, 오이는 아직 읽는 도중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아파트가 마음에 든 2가 분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오이도, 2 못지않게 이곳을 맘에 들어 했습니다. 그러나 오이의 입에서 나온 것은 “이사하라네?”라는 말이었습니다. 게다가 어쩐지 기뻐하는 듯한 목소리였습니다.
  “그럼 이사하지 뭐. 난, 용감한 오이니까.” 
  그렇게 말하고 싱긋 웃었습니다. 
  속이 탄 2가 모자에게 묻자, 모자는 조용히 웃으며 “난 그다지 용감한 모자는 아니지만, 이사할까 하고 생각했어. 크게 소란 피울 정도의 일은 아냐.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어.”

  오이는 직장을 오가며 자전거로 부동산 중개 사무소에 들러, 새로운 집을 알아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운동기구가 있고, 2의 의자며 모자의 낡은 단지도 있으므로 넓은 방이어야 합니다. 
  “부엌은 가능하면 마주 보이는 대면식이 좋은데. 거실에는 커다란 창이 있어야 합니다. 달이며 별이 보인다면 근사할 테니. 어쨌든 친구들이 모이는 방이거든요. 저는 책임이 막중합니다.”  

  어느 시가 동쪽 변두리에 오래된 아파트가 있었습니다. 낡고 허름한 회색의 석조 건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석조 건물은 안으로 들어서면 제법 선선하여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호텔 선인장’, 이것이 이 아파트의 이름이었습니다. 호텔이 아니라 아파트인데도 그런 이름이었습니다. 호텔 선인장에는 일찍이, ‘모자’와 ‘오이’와 숫자‘2’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당에는 검은 고양이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 그리운 아파트는 이제 어디에도 없습니다. 

  세 사람은 재회하고, 다시 오이의 방에 모여 저마다 겪은 인생의 새로운 사건들을 이야기하며 술을 마실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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