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어>(윤대녕)
다이제스트: 정민아
이른 봄에 나는 부모가 사는 공주에 찾아가 있었다. 아버지의 생일이었다. 새벽 네 시쯤이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조심스럽게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희부윰한 수면등 불빛 속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것은 놀랍게도 아버지였다. 나는 홀린 듯 아버지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그는 맨발에 슬리퍼를 꿰어 신고 비 내리는 마당에 서서, 나더러 가까이 오라고 했다. 아버지가 내게 정면으로 말을 걸어온 것은 이번이 꼭 세 번째였다.“네 에미 울음소리에 잠이 깼다. 때 없이 아픈 것을 보니 곧 갈 거 같구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거라... 그리고 이혼 문제는 좀 더 신중히 생각하고.” 이렇게 절망처럼 말하곤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오랜 유년의 기억 하나가 문득 떠올랐다. 가세가 기울어 사글세방에서도 쫓겨낼 판이었을 때 아버지는 무작정 집을 나서볼 요량으로 대문을 나서더니 스윽 새벽 속으로 사라져갔다.마치 죽음처럼. 집으로 돌아오니 익명의 전화 메모가 돼 있었다. 약 육개월 전부터 만나오던 은이와, 시인 이수현이었다. 나는 먼저 은이에게 전화했다. 두 시에 동숭동 밀다원에서 만나. 나는 시인 이수현에게는 오늘밤 늦게 집으로 다시 전화를 하겠다고 말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동숭동으로 가는 도중 잠깐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가는 사라졌다. 몇 년 전 어느 날 그는 훌쩍 집을 나간 적이 있었다. 나중에야 그가 자신의 묘자리를 미리 잡으러 돌아다닌다는 사실을 알았으나, 그 돌 같은 양반의 속내는 끝내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줄곧 은어 생각에 빠져 있었다.밀다원 이층 구석진 자리에서 나는 그녀와 앉아 있었다. 그녀의 눈은 언제나 도전적이고 처음 보았을 때의 그 가련함 속에는 누구한테서도 볼 수 없는 파괴적이고 도발적인 힘이 숨겨져 있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정면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받는 상처와 슬픔의 무게가, 앞으로 다가올 위험에 대한 불안이 동시에 느껴진다. 무성영화에서 공놀이를 하는 식의 대화가 끝도 없이 계속되고, 그렇듯 그녀와 나는 항상 양자 사이에 놓인 거리를 재고 있다. 그 거리를 흠애하는 수밖에 없지만 이런 식은 오래가지 못한다. 아무려나 그녀와의 사이에 무슨 일이 곧 벌어질 거라는 위악에 찬 예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녀도 그걸 감지하고 있으리라.밖엔 비가 멎어 있었다. 갑자기 그녀가 남산엘 가고 싶다고 했기 때문에 택시를 타고 깃발처럼 흔들리는 거리를 타임머신처럼 흘러갔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팔각정에 앉아 회색으로 무겁게 가라앉은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면서 무슨 생각인가에 골몰해 있었다. 마주 잡은 손에서 전해져오는 미세한 떨림으로 인하여 나는 온몸의 촉각이 곤두서 있었다. 마치 민물고기 한 마리를 손에 쥐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와 나는 남산을 내려오기 전 식당에서 두 병의 맥주를 다 마실 때까지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었다.“제비가 음력 삼월 삼일에 강남에서 왔다가 구월 구일에 돌아간다죠?” “그렇다는 말이 있더군.” “요샌 영원, 회귀, 불멸, 이런 것을 생각하며 살아요...” “그런 말을 하니까 우물에 빠져 죽은 우리 막내 삼촌이 생각나는군.” “!...얘기해줘요.”그리하여 그녀와 나는 다시 은어 얘기를 시작했다. 열 살 때까지, 나는 유학자였던 조부의 집에서 살았다. 새벽에 잠이 깨는 때가 많아 슬그머니 뒤란으로 나가 파밭에 오줌을 누는 사이 어딘가에서 철썩! 하고 무언가가 몸을 뒤채는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그것은 뒤란에 있는 우물 속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검은 구멍이 빨아들일 듯이 그 깊은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걸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다시 철썩! 하고 무언가가 솟구쳐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은어라는 소리가 들렸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삼촌이 있었다. 얼굴이 검고 좀체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매양 그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는 음습한 그림자, 축축한 빛을 보는 게 고단한 일로 생각됐다. 가끔 나를 데리고 강으로 나가곤 했지만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어느 날인가 그에게 우물 속에 있는 은어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며칠 후 그는 나를 뒤란으로 부르더니 우물 속에 고개를 처박고 ‘은어 같은 여자를 만나고 있다. 곧 헤어져야 할 것 같다. 다른 남자의 아이를 뱃속에 가지고 있다.’ 말하곤 우는지 세차게 어깨를 들먹거렸다. 그날 저녁 그는 우물 속, 검푸른 이끼가 끼어 있는 돌 틈을 딛고 내려가서는 다시 올라오지 않았다. 우물은 곧 메워졌고 그 자리에 누군가가 포도나무 한그루를 심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포도나무를 은어의 무덤이라 불렀다.그러고 나서 내가 ‘은어’를 만난 것은 오랜 세월이 지난 뒤였다. 가끔씩 나는, 결혼 전 아내와 사귄 박현우에게 전화를 걸어 무턱대고 만나자는 약속을 하곤 했다. 그때마다 상대는 곤혹스러워하며 번번이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파리지엔이라는 카페를 인수했단 소리를 듣고 만나잔 일방적인 통보를 하고 이틀 후 그곳에 찾아갔더니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문패가 붙어 있었다. PIZZA. STEAK, CAFE & RESTAURANT, SINCE 1990, PARISIENNE. 설명할 순 없지만 그것은 기이하게도 무슨 ‘조문’ 같은 느낌이 있었다.가끔씩 의식을 앞지르는 선험적인 느낌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고 있는 편이다. 웬 젊은 여자가 보리차를 쟁반에 받쳐 들고 나타났다. 생각지도 않았던 순간에 나는 또 은어! 하고 신음하듯 내뱉었다. 그녀는 시체처럼 창백해 보였고 가을 저녁 들판의 냄새가 났다. 나는 커피 두 잔을 시켰다. 다른 한잔이 자신의 것임을 모를 리 없었을 텐데 그녀는 거절했다.예감대로 그는 두 시간이 지나도 카페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결혼 후에도 때때로 아내가 그를 만난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으나 나는 아내에게 그런 내색을 한 적이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아내와의 반목의 골이 깊어져 사태를 해결해야겠다는 막연한 관념으로 박현우에게 전화를 해보는 것일 뿐이었다.삼촌이 죽은 뒤 초등학교 사학년 땐가, 선생님은 치어란 말과 규조란 말을 더듬거리며 설명했다. 은어를 본 것은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뒤였다. 등이 푸르죽죽하고 배는 하얀, 날씬하게 생긴 고기였다. 살면서 몇 번인가 더 은어와 만났다. 한번은 섬진강이 고향인 친구의 시구에서, 한번은 ‘한국 민물고기 생태 현장’취재를 한 선배의 프로그램에서 보았다. 죽은 수만 마리의 은어 떼가 허옇게 배를 뒤집은 채 바다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정말 장관이었다.열시가 되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한 잔의 커피값을 내게 돌려주었다. “죄송해요. 저는 커피를 먹지 않아요.” 나는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고 한동안 그대로 서있었다. 그런데 이런 말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입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은어! 그녀의 입이 물고기 주둥이처럼 벌어졌다. 그녀는 하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까는 ‘은어’를 제 이름 ‘은이’로 잘못 알아 들은 거다.그녀를 만나면서 나는 자주자주 은어를 떠올리곤 했다. 우리는 쉼 없이 술잔을 들었다 놨다 하며 또 은어 얘기를 했다. 우리의 경과가 시작된 곳으로, 부활하기 위해 지금 수만의 은어 떼들이 나와 함께 강물을 거슬러 오르고 있다. 맥주 열 병을 다 비워갈 즈음에 그녀가 어깨를 기대왔다. 여관에 가서 그녀는 신체검사를 받는 병사처럼 옷을 벗었다. “영원히 변치 말아줘요, 네? 내 곁에 있어줘요.” 그녀가 별안간 악을 썼다. 그 소리를 듣곤 이내 몸이 얼어붙어 결국 포기해야만 했다.그녀와 헤어지고 이수현과 만나 술집에서 소주를 마시고 형편없이 취해 어디론가 갔다. 불현듯 눈을 뜨자 웬 붉은 옷의 여자가 스르르 옷을 벗더니 이불속으로 기어들어왔다. 안 하고 그냥 누워있으면 안 돼? 그래. 잠결에 나는 여자의 몸이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집에 돌아와서부터 몸이 맹렬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받았다. “그래, 결국 이혼하겠다는 거냐? 어린애는 무슨 죄가 있냐!” 나는 밤낮으로 고열에 시달리고 사이사이 술도 마셨다. 그때에도 나는, 내 곁으로 세찬 물살을 가르며 수만의 은어 떼들이 어딘가로 거슬러 가고 있다는 환각에 빠져 있었다. 또한 누군가는 나를 앞질러가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 예감이 맞았던 것일까. 부사망급래. 아버지의 죽음은 음독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꿈에 내 머리위로 죽은 은어 한 마리가 둥둥 떠내려 왔다.Copyrightⓒ 유용선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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