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장정욱]
습관적으로 통근버스를 기다렸다
퇴직한 나를 지나칠 때까지
얼음 속 낙엽의 기분으로 오후를 지냈다
꿈속에서 자주 지각을 했다
시계는 내가 얼마만큼 낡아야 하는지
늙은 감정을 사랑해도 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어느 소설책에선 여주인공이 마흔 살 생일에
남편에게 손수 애인을 골라줬다
오래전 당신은 출장 중이었다
진주알은 늘어진 소문 끝에서 빛나지 않았고
영원할 것 같았던 어둠도 한 장 남았다
달력 끝에 매달려 그네를 타는 아이들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저 순환이
한없이 지루한 계절
먼 별자리를 되돌아 나오는 막다른 질문
골목의 뒷덜미는 아직 물들지 않았고
우리는 모두 집에 없었다
- 여름 달력엔 종종 눈이 내렸다, 달아실, 2019
* 읽고 나니 쓸쓸해지는 마음이다.
어떤 석학이 이십일세기말에는 가족의 개념이 없어진다고 했다.
결혼이 없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혼을 해야 가족이 되고 사회적인 관계속에서 작은 사회가 되는 것인데
선물로 주고받는 관계가 계속되면 가족은 해체되는 것이다.
혼자 살다가 마음이 동하면 계약없이 같이 살다가
마음이 틀어지면 다시 혼자가 되고
아이를 낳더라도 국가가 무한책임으로 가족을 대신해서 양육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집에 없었다, 라고 한다면
집조차 사라지고 여관만 남아 혼자 유랑하며 여관방에서 뒹굴지도 모른다.
수명은 점점 늘어나 팔순구순이 되면 치매가 올 수도 있는데
정말 얼음 속 낙엽의 기분으로 살아야할, 그런 세상이 온단 말인가.
달력의 끝장이 끝장이 되지 않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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