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척들
김 은 경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는데 정작 얼굴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눈이 짝짝이었는지 눈동자가
갈색이었는지 검정이었는지
우리는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고
어느 날 화들짝 당신이 떠올라
혹시 곁에 있는가 나는 미심쩍고
가령 빨래 삶는 냄새 같은 것
흰빛이 더욱 희어질 때 우러나는 경이 같은 것
어제 내린 폭설을 딛고 어룽어룽 피어오르는 봄 냄새 같은 것
간지럽고 두근거리고 아름답고 슬픈
갖은 기척들
물방울이 남긴 얼룩이 당신 얼굴이었다가
사라집니다
눈앞에 하얀 찻잔이 당신 몸처럼
식어갑니다
우리는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습니다
이승 같은 이승에서 한 번도 우리는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화들짝 당신이 떠올라
혹시 곁에 있는가, 나는 웁니다
근심을 모르고 근면을 모르고 사뿐
날아오르는 노랑나비를 보다가 웁니다
소매 끝에 대롱 달린 단추를 보다가
그것의 목을 다시 달아야지 생각다가
목이 메는 기분으로 하루가 다 갔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결국 당신의 끝없는 꿈을 대신 꾸는 일이었습니다
인간이어서 죄송한 사람들이
인간다움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안간힘을 쓰며 봄을 살아냅니다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2019, 걷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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