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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랑

화가 이중섭이 시인 구상에게/ 이승하

작성자박제영|작성시간19.06.17|조회수158 목록 댓글 0

[소통의 월요시편지_661호]


화가 이중섭이 시인 구상에게

 

이승하

 

 

 

 

상常이

보고 싶구려

사흘만 안 봐도 보고 싶으니

우리는 전생에 형제였나 부부였나

 

집을 갖고 싶었지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살 집 한 채면

나 먹지 않아도 배부를 수 있고

마시지 않아도 취할 수 있을 것 같았지

 

50년 10월 송도원의 집 폭격으로 불타고

부산 범일동의 창고에 살면서

낮이면 부두에서 하역 작업

무얼 짊어져도 자식 굶기는 아비였지

 

제주시까지는 배편으로 서귀포까지는 걸어서

게 잡아먹고 조개 캐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넓고 넓은 바닷가의 오막살이 집 한 채

쌀 사 먹을 길은 막막하였다

 

다시 범일동으로 범일동 판잣집으로

자네는 집이 있지 가족이 있지

아, 하늘 아래 나는 집이 없구나

장남 세발자전거에 태우고 노는 상이! 洪홍이!

 

具常兄前 李仲燮弟*

 

 

 

* 구상형전 이중섭제具常兄前 李仲燮弟 : 이중섭은 구상보다 세 살이 많았지만 시인의 인품을 높이 사는 의미에서 늘 '형'으로 불렀다. 구상 시인의 장남 이름이 구홍이었다.


 

- 『생애를 낭송하다』(천년의시작, 2019)


 

 

 

*
이승하 시인의 신작 시집 『생애를 낭송하다』의 발행일이 공교롭게도 2019년 4월 16일입니다. 공교롭게도 말입니다. 세월호를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시집이 크게 "生, 愛, 苦, 死"를 다루고 있으니, 이 또한 참 공교로운 일입니다.

 

시집에 '시인 구상이 화가 이중섭에게'라는 시와 '화가 이중섭이 시인 구상에게'라는 시 두 편이 눈에 띄었는데, 오늘은 그중에서 후자의 시를 띄웁니다.

 

시인 구상과 화가 이중섭은 '관포지교'의 절친이고 두 사람의 우정에 얽힌 이야기도 참 많은데, 그중에서도 이중섭의 그림 '천도복숭아'에 얽힌 일화는 꽤 유명하지요.

 

구상 선생이 폐결핵 수술을 받았을 때, 이런저런 지인들도 병문안을 왔는데, 제일 먼저 올 줄 알았던 이중섭이 오히려 오지 않은 겁니다.

다음 날 이중섭이 오자 “왜 이제 오냐”고 섭섭한 마음에 화를 내자, 이중섭이 웃으며 그림 하나를 건네면서 그랬답니다.

"천도복숭아 그림을 그려오느라고 늦었구마. 이기 무병장수를 상징하지 않네. 이기 걸어놓으면 병도 낫고 오래 살거구마."

구상 시인께서는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그 그림을 서재에 걸어두고 평생을 함께했다지요.

 

이승하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우정이 뭔지 친구가 뭔지 새삼 생각해보게 되는 아침입니다.

 

서양 속담에 "친구는 신이 우리를 돌보는 방식"이라는 말이 있고,

인디언 속담에 "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 무하마드 알리는 우정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지요.

"우정은 세상에서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과 같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정의 의미에 대해 배우지 못했다면, 당신은 정말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것이다."

"지금 옆에 있는 그 친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불행해져보면 안다"는 말도 있는데, 일리는 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길 수도 없고 참 그렇지요?

말들은 참 그럴싸한데 막상 나에게 적용해보려고 하면 그게 참 헛헛한 말들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2019. 6. 17.

 

달아실출판사

편집장 박제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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