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기둥 [박철]
아무래도 나는 롯의 아내가 되지 않기 위해 이 얘길 전
해야만 하겠다.
어린 자식들 먹여야 하니 네가 대신 남으로 가라. 죽을
고비 서너번에 고무신까지 갯벌에 벗어준 채 교동서 김포
로 오빠 찾아가는 먼짓길이다. 흰둥이 검둥이 태운 미군
트럭이 지날 때마다 연백 촌것이 보따리 들고 갓길도 아
닌 굴렁밭으로 뛰어내리지 않았겠니. 흰 저고리 검정치마
는 또 얼마나 볼만했을고. 그때마다 그게 우스워 양키들이
손가락질하며 크게 웃곤 하더구나. 고촌에 당도해 올케가
처매준 복대 속 돈주머니를 친척 앞에 풀었다. 애들은 위
험하니 간수하마 가져가 영 달아나버리더구나. 어둠을 지
고 들어온 오디 얼굴의 오빠는 첫마디가 올케는 안 오고
왜 네가 왔냐 소리부터 지르더라. 피난살이 고되고 젊은
아내가 보고 싶기도 했겠지. 올케가 전해주라던 그 잃어버
린 전대 오십만환 얘기를 보따리처럼 안고 평생 끙끙 앓았
다. 50년이 지난 언젠가 큰오빠 세상 뜨기 전 맥 놓듯 고백
을 하자 그랬구나 하고 검불처럼 털어버리고 떠나더구나.
그렇게 내처 김포서 시집살이하면서도 고향 연백은 아직
가고 싶은 마음 하나 없더라. 어디 간들 이 한 몸 반길 곳은
없다 믿고 살아왔다. 이제 저승도 두렵지 않구나. 아니다
두렵다.
이게 요즘 식으로 말하면 대인기피증으로 평생 집 밖 출
입을 두려워 한 내 어머니의 손가락 마디만 한 발병 원인
이다. 다행히 유전이 아니라 내게서 대물림이 끝나는 짧
고 고마운 내력이기도 하다. 삼팔따라지 사팔따라지 돌아
봐야 부지깽이만도 못한 세월. 그러나 나는 앞으로 앞으로
돌진하리니 이제 더이상 소금기둥 될 일은 없어진 것이다.
돌아볼 일은 없다. 어느날 정신 나간 늙은 개처럼 비명처
럼 통일이 오든 말든 괴여할 바 아주 아주 없이.
- 없는 영원에도 끝은 있으니, 창비, 2018
* 교동, 연백, 복대 속 돈주머니 등등은 실향민들에게는 눈이 번쩍 뜨일 말이다.
그렇게 가족들은 헤어졌고 그렇게 칠십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다.
실향민 1세대가 이제 치매에 걸려 정신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고 있으니
2세대에게는 곧 돌아볼 일이 없겠다.
삼팔선 이남이었던 연백 사람들은 전쟁통에 이북으로 변해서 갈 수 없는 삶을 살다간다.
눈앞에 보이는 연백을 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