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개석과 국민정부는 20년대말부터 전차에 관심을 가져 여러나라로부터 경량전차와 장갑차를 구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36년 남경에 기계화학교를 정식으로 설립합니다.
그동안 여기저기서 구입한 전차와 군벌군이 가지고 있던 전차, 장갑차, 독일과 소련에서 원조받은 물건들까지 긁어모아 만든 것이 제 200 사단입니다.
제 200사단은 당시 파견나와 있던 소련 군사 고문단의 지도에 의해 편성되었으며 자동차화 보병 1개 연대, 전차 1개 연대로 구성되었으며 다시 1개 연대는 각각 4개 대대, 1개 대대는 3개 중대식의 편제로 구성되었습니다.
T-26 경전차 88량외에 독일제 1호 전차, 이탈리아제 CV33, 35, 영국제 비커스, 프랑스제 르노 기타 장갑차까지 약 200량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잡동사니 전차 모음군단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부대는 상해공방전, 남경전투에 투입되어 큰 피해를 입었으며 39년 초 중국군의 대 반격작전이었던(그러나 참담한 패배를 당했던) 남녕전투에서 거의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후 일반 보병사단으로 재편된후 전략 예비대였던 제 5군에 편입되었습니다. 태평양전쟁발발후 버마전선에서 M-3스튜어트 경전차를 공여받고 미제식으로 무장되어 일본군을 상대로 큰 전과를 내었습니다. 국공내전때는 금문도에도 참전했지요.
1939년 초 제 200사단의 편제
T26 :79 량
CV35 :88 량
빅커스:14 량
르노:10 량
1호 전차:6 량
단순히 숫자만 본다면 제법 큰 규모이며 '大' 루마니아기갑사단과 비교해도 규모가 꽤 크지요.(질은 둘째치고) 그런데 당시 사고로는 전차나 장갑차같은 기계화병기를 어느 한부대에 모아주기 보다 여러 사단에 분산하는 것이 보통인데(프랑스, 소련) 장개석은 한 부대에 몰아주었습니다.
독일식 전격전을 구상한 진보한 사상이라고 해야할지 그냥 깡통전차들 관리하기 편하게 한데 몰아준건지...
[출처] 중일전쟁 초반 중국군 유일의 기계화사단 제 200師|작성자 욱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