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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의외로 대한 최후의 의병이었던 단체

작성자흥미돋는글|작성시간26.08.11|조회수3,144 목록 댓글 10

출처: https://www.fmkorea.com/8582650808

 

 

 

 

 


1909년 호남에서 활동하던 의병

 

 

의병(義兵. Righteous armies)

 

유교적인 정의는 국난의 상황에 웅대한 의기를 억누르지 못하고

 

 

어느 날 분연히 떨치고 일어난 이들을 말하며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소련의 파르티잔도 그 맥이 같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통제에서 벗어나서 도적떼가 되는 집단도 있었지만

 

다수의 의병 집단은 끝까지 투쟁하며, 초기 독립군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홍범도는 무려 을미의병(1895)부터 독립군까지 모든 테크를 밟은 인물

 

 

아무튼 대다수의 인식으로는 한반도의 마지막 의병

 

1907년 정미의병이 분연히 일어난 뒤

 

 

1909년 일본의 남한 대토벌 작전으로 인해

 

의병 조직이 완전히 와해되었고

 

 

생존자들이 만주로 가서 독립군을 형성했다고 알고 있다.

 

근데 의병의 조건과 개념을 보면 한반도 최후의 의병은

 

 

의외로 꽤 최근까지 존재했다고 할 수 있는데....

 

 

 

 

 

 

 



 

 




1945년 일본은 미스터 언체인 아-메리카에게

 

육편이 되도록 으깨져버린다

 

 

 

미국과 소련은 일본의 영토를 혼슈-규슈-시코쿠-홋카이도

 

4개의 본섬들만 규정했고

 

 

나머지 부속도서 문제는 추후의 회의로 정하기로 합의를 본다

 

그리고 당연히 1952년까지 미국이 직접 일본을 통치한다

 

 

 

 

 

 

 

 

 

 


일본 독도 논쟁에 카운터를 제대로 먹이는 SCAPIN 제677호

 

연합국 사령부는 SCAPIN 제677호

 

(일본의 일부 주위 지역의 정치 및 행정적 분리)

 

 

를 발령하며 전후 일본의 행정구역에서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 특히 울릉도(우츠료), 독도(타케)를 분리시켰고

 

 

연합군 최고사령관 각서 1033호를 발동하여

 

일본 선박의 독도 인근 해역 출입을 전면 금지한다

 

 

 

※ 해당 문서에서 울릉은 한국-일본어 지명표기

 

제주는 한-일-영, 독도는 일-영으로 지명이 표기됨

 

 

 

 

 

 

 

 

 

 

 


??? : 아직도 정부없는 찐따 국가가 있다?!ㅋㅋㅋㅋㅋ

 

 

그리고 일본이 아직 미군정의 통치를 받았던 1948년에는

 

아예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며 국제적인 승인을 받아버린다

 

 

일본은 독도 문제에 대해 상당히 강하게 반응했지만

 

당시 일본은 주권 없는 맥아더 쇼군의 안방이던 상황

 

 

그렇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독도 우표 붙여서 보내는 비틱질에도

 

걍 독도 부분을 먹칠해서 반송하는 찐따 짓 밖에 할 수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외교 부분은 신들린 수준이긴 했던 싱먼리

 

 

그러나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 결과

 

1952년 4월 28일부터 일본의 주권이 회복됨이 결정되자

 


이에 간사하기 짝이 없는 일본의 모습을 잘 알던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 주권 회복 3개월 전

 

 

1952년 1월, 한일간 평화유지라는 명목하에

 

일방적으로 영해 기준(3km)보다 20배가 더 큰 수역을(111km)

 

 

대한민국 주권이 미치는 해역인 평화선으로 선포한다

 

 

 

 



 

 

 

 

 

 

 


님 도르신?? 이젠 노망이 제대로 들었구만

 

 

당연히 국제법을 제대로 위반한 조치였기에

 

미국은 G뢀말고 평화선 철회하라고 이승만 정부에게 통보했고

 


일본 역시 뭔가 대응을 하려고 했지만

 

아직 주권 없는 찐따 정부였기에

 

 

"독도를 평화선 내에 포함한 것은 영토 침략"라는

 

공식성명을 내며 존na 비난 했지만

 

 

 

 

 

 

 

 

 

 

 

 



奀까

 

 

 

 

 

 

 

 

 

 

 

 

 

 



그렇다

 

이승만 정부는 미국의 통보를 무시해버린다

 

 

이에 일본은 도쿄에 있던 연합군 최고사령부를 통해

 

전쟁 중이던 한국에게 압력을 행사하려고 했지만

 

 

한국에서 빨갱이들이랑 진심펀치를 쏟던 연합국 입장에선

 

이딴 거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고

 

 

그래도 항의를 계속하자 유엔군 사령관인 마크 클라크 대장

 

평화선과 비슷한 클라크 라인을 선포하며 일본에게 물을 먹인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이 ^^H끼들은 특유의 음흉함이 나오는데

 

우선 일본의 어업 지도선이 독도에 무단 상륙한 뒤

 

 

독도의 일본 주소(시마네현 오키군 다케시마)가 적힌 팻말을 꽂아두었고

 

1948년 미군의 오폭으로 인해 사망한 한국인 어민 위령비

 

 

뽑아서 바다에 던져버리는 만행을 저지르자

 

이에 정부는 물론이고 국민들 역시 제대로 빡치기 시작한다

 

 

 

 

 

 

 

우선 이승만 정부는 이를 중대한 도발행위로 간주

 

전시 긴급명령(???)을 선포, 일명 포획 심판령을 제정한 뒤

 

 

포획 심판소를 설치한 뒤 해군에서 가용 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을 투입해서 평화선 내 해역에서 조업하는 

 

 

일본 선박을 모조리 나포하고, 일본 어민들을 한국으로 끌고 간다

 

물론 평화선 밖에서 조업하는 어선도 자진 입대 시켰던 케이스도 많다

 



 

 

 

 

 

 

 

 

 

 

 


??? : 엎드릴 수 있도록 해

 

 

문제는 이 때가 광복 된 지 10년도 안된 시점이라

 

일본만 보면 다수의 수병들이 눈이 돌아갔기

 

 

선원들을 모조리 붙잡아 해병수육...아니 재판에 회부했고

 

정선을 거부하고 빤스런을 시도하면

 

 

바로 총격을 가하거나, 거북선 정신으로 충각(....)으로

 

어선을 격침시킬 정도로 존na 강경하게 나간다

 

 

 

 

 

 

 

 

 


어찌보면 한국 최후의 의병장인 홍순칠

 

 

그러나 그럼에도 일본 순시선이 계속 독도 쪽으로

 

상륙하며 한국인 출입 금지 팻말을 꽂는 행태를 반복하자

 

 

이에 한국 전쟁에서 부상을 입어 고향 울릉도로 돌아온

 

홍순칠 육군 특무상사와 울릉도의 청년들은

 

 

일본의 이 행태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예 독도로 들어가 이들을 막기로 결의하니 이들이 바로 독도의용수비대이다

 

 

 

 

 

 

 

 

 

 

 

 

 

 



이들은 정부의 지원 없이 스스로 무기와 장비를 마련했는데

 

홍순칠이 직접 부산에서 오징어를 팔며 자금을 마련했고

 

 

대원들이 목재, 전답, 산을 팔아서 각종 무기와 장비를 구입한다

 

이후 최종 33인의 의용수비대가 결성되었고

 

 

1953년 독도의 서도에 상륙하는데 성공한다

 

참고로 전쟁 중이라 의용대임에도 무장 수준이 꽤 대단했다고...

 

 

 

 

 

 

 

 

 

 

 

 

 

 

 


최초로 독도에 게양되는 태극기

 

 

이들은 상륙 즉시 태극기를 게양한 뒤 애국가를 불렀고

 

바로 경계 근무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주요 임무는 일본 순시선 상륙 저지

 

인근 해역에서 조업 중인 어민 보호였고

 

 

남는 시간에는 망치와 정을 들고 독도를 개척하며

 

여러 시설물을 건설하기 시작한다

 

 

 

 

 

 

 

 

 

 

 

 

 

 

 

 

 



이후 1953년 6월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 치마루호에

 

위협사격을 가하며 철수시킨 것을 시작으로

 

 

이들은 약 세 차례 무장 순시선을 상대로 격퇴하거나

 

승선해서 퇴각 조치시키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일본 순시선이 상륙해서 한국 팻말을 뽑아가지 못하도록

 

아예 한국령이라는 글자를 동도 바위에 새겨넣는다

 

 

 

 

 

 

 

 

 

 

 

 

 



그러나 정부 지원 없이 순전히 개인이 꾸려가던 의용대였기에

 

이들은 상당한 고난을 겪어야 했는데

 

 

태풍과 폭풍우가 매일 같이 와서 보급이 끊겼기에

 

근처의 미역과 빗물로 연명하는 일이 많았고

 

 

정부에서 보낸 위로품을 수령하다가 허학도 대원이 실족사하는 등

 

내외부적으로 숱한 고생을 했지만 이들은 기어코 버텨낸다

 

 

 

 

 

 

 

 

 

 

 

 

 


일본 해상 보안청의 PM급 무장 순시선

 

 

그러던 중 1954년 11월 21일 아침

 

독도 수비대는 일본 해상 보안청 소속의 무장 순시선

 

 

PM-06, PM-14, PS-16호와 해상 초계기

 

독도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발견한다

 

 

우선 경고 총성과 퇴각 방송을 송출했지만

 

이들은 단순한 무력 시위가 아닌 독도 상륙을 위해 다가오기 시작한다

 

 

 

 

 

 

 

 

 

 

 

 

 

 



일본 무장 순시선은 약 한 시간 동안 빙빙 돌며

 

독도 상륙 각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간과한 게 있으니, 독도의용수비대원 대다수는

 

한국 전쟁 참전자로 이뤄진 집단이었고

 

 

심지어 1전투대장인 서기종은 하필 육군 포병 상사 출신이라

 

무려 박격포 초탄을 PM-14에 명중 시켰을 정도ㄷㄷ

 

 

 

 

 

 

 

 

 

 

 

 

 

 

 

 


박격포로 노릇노릇하게 구워버린 서기종과 1전투대


암튼 박격포를 맞은 무장 순시선은 초계기만 빼고

 

긴급히 일본쪽으로 빤스런을 쳐버린다

 

 

이후 초계기도 몇시간 동안 위협 비행만 한 뒤

 

일본 쪽으로 최종적으로 철수했고

 

 

이것이 바로 독도 대첩이다

 

다만 이 때 무장의 빈약함 때문에 기만술로

 

 

통나무를 검게 칠해서 해안포인 것처럼 주작쳤다고ㅋㅋㅋ

 

 

 

 

 

 

 

 

 

 

 

 

 



당연히 순시선 1척이 중파당하고, 16명의 사상자가 난

 

일본 정부는 항의 각서를 제출하며

 

 

독도에 해안포를 왜 갖다놨냐고 맹비난을 퍼부었지만

 

한국 정부는 병먹음으로 대응하며

 

 

독도에 해안포를 설치한 적도 없는데 헛소리 ㄴㄴ요 하며

 

일본 정부를 존na게 긁어댄다

 

 

게다가 일본은 당시 빼도박도 못하는 전범국 취급이었기에

 

평화선에 대해선 잠자코 침묵 할 수 밖에 없었다ㅋㅋㅋ

 

 

 

 

 

 

 

 

 

 

 

하지만 개인이 의용대를 꾸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고

 

홍순칠 대장은 정부에서 자신들의 일을 인계해 줄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정부는 근무환경이 열악하다고 난색을 표했고

 

경찰들 역시 근무를 거부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들의 활약 덕분에 독도 경비대 창설 논의가 시작되었고

 

1956년 12월 30일 독도 경비대에 업무를 인계함으로써

 

 

임무를 성공적으로 끝낸다.

 

참고로 대원 중 10명은 경찰 소속으로 전환해 근무를 계속했다

 

 

 

 

 

 

 

 

 

 

 

 

 

 



그러나 독도의용수비대는 이후에도 고난을 겪으니

 

대장인 홍순칠이 일본측의 해적 주장 때문에

 

 

주한미군에게 체포되어 국회 청문회까지 갔지만

 

여기서 김두한 뺨치는 명연설로

 

 

국회의원들의 여론을 180도로 돌려놔서

 

무사히 석방될 수 있었다

 

 

 

 

 

 

 

 

 

 

 

 

 

 



또한 박정희 정부 시절에는 독도 개발 계획서를 제출했다가

 

일본과의 관계 악화를 이유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사흘 동안 고문을 당했고

 

다시는 글을 쓰지 못하도록 오른손을 부러뜨려버린다

 

 

여기에 전두환 정부는 그의 행적이 북한 방송에 나오자

 

바로 체포해서 고문을 가하며 간첩 조작을 시도한다

 

 

참고로 이 때 전두환 정부는 독도의 민간인 출입을 금지하고

 

독도는 우리땅 노래를 방송 금지곡으로 지정한다

 

 

 

 

 

 

 

 

 

 

 

 

 

 



홍순칠 대장은 1986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그러나 1996년, 김영삼 정부는 홍순칠 대장에게

 

 

보국훈장 삼일장을 추서했고

 

나머지 대원들에게는 보국훈장 광복장을 수여하며 공로를 인정했고

 

 

2005년에는 독도의용수비대 지원법이 제정되었고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의 현충원 묘역에 안장을 허용한다

 

 

 

 

 

 

 

 

 

 

 

 

 

 


1966년 첫 포상 때는 11명 밖에 못받았다

 

 

여기서 앞서 말했던 의병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보자

 

의병. 

 

"국난의 상황에 웅대한 의기를 억누르지 못하고

 

어느 날 분연히 떨치고 일어난 이들"

 

독도 의용수비대는 정부의 지원도 받지 않은 채

 

한국의 가장 위태로웠던 순간에 동쪽의 외딴 섬을 지켰다

 

 

이들이 이를 행한 것은 보상이 아닌 단순한 의기와 애국심이었다

 

이것으로 보아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최후의 의병이라고 말할 만 하다

 

 

 

 

 

 

 

 

 

 

 

 

 

 

 


참고로 이승만 정부는 1955년 아예 해양 경찰대를 창설하여 무려 328척의 일본 선박과 3,929명의 일본인을 체포합니다

이 중 44명이 사망, 나머지도 열악한 식사에 시달렸고, 혐의를 인정하지 않으면 고문까지 가합니다

이에 일본은 급증하는 피해에 순시선을 파견했지만 한국 해군 전투함이 오히려 전투배치 하면서 달려들었기에

이들은 평화선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아무튼 평화선은 박정희 정부 때 한일어업협정으로 12해리(22.22km)를 EEZ로 합의하며 공식적으로 철폐됩니다

물론 당연히 그 대가로 9천만 달러를 어업협력자금으로 삥뜯긴 했지만 말입니다ㅋㅋㅋ


그러나 엄밀히 보면 아직 평화선은 법적으로 존재하기는 하는데, 근거 법령이 아직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1945년부터 1960년까지 일본배는 떠다니는 황금 고블린 취급이었습니다.

전범국 + 해상자위대가 확 쪼그라들었기에 15년간 중국 + 대만이 232척, 북한 9척, 미국 53척,

인니 23척, 필리핀 13척, 소련 1,164척, 호주 3척 순으로 나포당하며 인접 국가에게 배란 배는 모조리 털립니다

이들 역시 선원만 풀어주고 배는 그대로 해군이나 어민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평화선을 어느 정도 암묵적으로 용인한 것도 지들도(?) 일본배를 털어 먹어서 라는 주장도 있을 지경입니다


-끝-

 

 

댓펌)


의병이 독자적으로 일본정부 무너트리긴역부족임?

 

실제로 정미 의병 때 전국 8도 의병들을 모은 13도 창의군이 서울진공작전으로 서울 밖 30리까지 가긴 했는데

결국 일본군의 압도적인 화력과 남한 대토벌 작전이라는 대규모 학살을 동반한 진압작전으로

의병의 씨가 마른 걸 보면 결국 비정규전 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긴 함

 

 만약유대인정도의경제력과 정보력있어도 역부족이었을까?

 

구한말 시절 한국이면 걍 불가능임

이미 한국 먹는 걸로 미국, 영국이랑 말 다 맞춰놓은 상태여서 뭔 수를 써도 식민지를 피할 순 없었을 듯


박과 전이 독도문제에 대해 저자세로 나간건 당시 경제개발을 위해선 일본자본을 대대적으로 들여와야 했기 때문.
특히 정통성이 없었던 전통에게 2차 석유파동과 1212를 이은 518로 박살나다시피한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서 일본정부의 차관에 목을 걸다시피했기때문에 일본눈치를 무지 봐야 했었음.

 

ㅇㅇㅇ 물론 당시 경제개발원조 받으려면 일본 원죄 의식 살살 긁어서
얻어올 것은 다 얻어오긴 해야하는거 인정하긴 함
근데 si발 그렇다고 한국전쟁 참전용사 + 독도의용대장을 너무 떠든다고 고문 및 간첩 주작은
선을 존나 넘은 것도 맞긴 함


저때 독도 의용수비대 없고 일본배가 독도 들어왔었으면 독도 먹히는거 였던거임 ㄷㄷ?

 

일단 의용수비대 없었음 정부 차원에서 한국 전쟁 때문에 저기에 인력 투입할 여유가 없었을 듯
물론 일본 영토화 문제는 좀 다르긴 한데, 상륙 후 점거한 뒤 배째기 모드로 갔을 확률도 있음


어민들 때문인가 일본정부 재건 전부터 아예 정부 차원에서 독도를 계속 노렸던건 처음 알았네요

 

독도 쪽 해역이 황금어장이라 조선 시대 안용복이 일본 가서 깽판 치고 온 것처럼
조선 시대에도 일본 어부들이 독도 근처 까지 들어와서 조업 많이 하긴 했음ㅋㅋㅋ


저거 일본어민 족친거 우익애들 발작버튼임 ㅋㅋㅋㅋ

 

아직도 독도 관련되서 저걸로 개ㅈㄹ 중임ㅋㅋㅋㅋ
꼬우면 독도 상륙해서 점령하던가


ㅅㅂ ㅋㅋ 박정희는 이중배상금지법만 알았는데 나라에 몸 바친사람 등 쳐먹기에 진심이었네

 

66년에 훈장 주긴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고문 + 손 부러뜨린 건....


근데 패전국인 일본한테 우리는 대마도 하나 받아올 수 없었던거임? 이승만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던데

 

거긴 너무 역사적으로 여지가 없긴 했음ㅋㅋㅋ
한국이 단 한번도 실효 지배를 해본적이 없는 곳이라


조상님들 테토력 지리네 캬

 

독도 의용수비대 창설 기준으로 불과 8년 전까지 일제 치하였던 시대라ㅋㅋㅋ
당시에 좃본이 개짓거리하면 일단 총부터 쏘는 거 인정하긴 함


전두환은 도대체 왜 독도는우리땅을 금지곡으로 정한거임
뭐 정치적인 내용이 하나도 없는데..?

 

당시에 한일의원총회같은 일본과의 외교이벤트들을 앞두고 반일감정이 커지는 걸 막고 싶어서 일시적으로 방송금지곡으로 지정함
https://m.seoul.co.kr/news/1998/08/01/19980801014001

 

당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한국의 육군 + 일본의 해군으로 중국과 북한, 소련을 견제하는거였음 그러자면 한일관계가 계속 좋아야 하는데 독도 문제 등으로 갈등이 생기면 좋지 않지 그리고 당시 전두환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기에 미국의 지지를 받아 자신의 통치에 적법성을 보장 받고자 했음 박정희 때 시도하던 핵이나 미사일 개발도 전두환 때 다 중단됐는데 다 친미노선을 타기 위해서였지 독도도 비슷한 이유로 다룬 감이 있음


이승만때 빼앗은배가 수천척이었다더만

 

328척
참고로 소련은 1100척 뺏음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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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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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시간은 고요히 흐르고 | 작성시간 26.08.11 박정희 전두환은 그냥 친일파 티내나 못줘서 안달이네
    진짜 저 분들이야말로 대접 받으셔야했는데
  • 작성자징역 4444년 | 작성시간 26.08.11 매국노ㅗㅗ
  • 작성자다시만난세개 | 작성시간 26.08.11 너무너무 감사한 분들....
    매국노 새끼들은 부관참시하라
  • 작성자조실세 | 작성시간 26.08.11 진짜 멋있다 와;;
  • 작성자마피 | 작성시간 26.08.12 좋은글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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