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소식 봄노래(12)
완전하고 순수했던 세상의 첫 봄 - '하이든'의 <천지창조> 중 '거친 들이 변하여'
경주의 봄, 태초의 말씀
노산맥
아픈 봄날이거든 봄빛 속에 봄은 보는 것이되, 대지에 문이 열리고 |
상처받지 않고 퇴화되지 않은 본연 그대로의 여여함, 고귀한 것은 하늘은 사람과 봄꽃의 조우의 시간을 짧게 두셨다. 그 시간에 무심할수록
봄 속에 |
오른슈타인(Michael Ornstein) 작, <First Spring>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어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 기독지혜사 刊, <빅라이프 성경> 중, 창세기 1장 11절에서 13절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땅 위에 돋게 하여라."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땅은 푸른 싹을 돋아나게 하였다.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돋아나게 하였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사흗날이 지났다.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刊, <성서>, 창세기 1장 11절에서 13절
기독교의 세계관에서 태초의 모습은 푸르고 평화로운 봄철 들녘으로 표현되고 있다. 창조주는 어둡고 깊은 혼돈의 심연에서 밝고 찬란한 아름다운 신록을 이끌어 낸다. 이른바 세상의 봄은 해마다 반복되는 창조의 빛나는 잔치이다.
우리 지구는 최초의 우주비행사 '가가린'의 말대로 빛나고 반짝이는 푸른 별이다. 푸른빛은 세상을 휘감고 있는 생명의 빛이고, 초록색은 모든 살아있는 피조물들이 머물고 약동하며 안식하는 삶의 색이다. 긴 겨울의 칙칙한 회갈색 대지는 생명의 기운을 받아 비로소 파란 새싹을 내뿜으며 봄을 맞이한다. 신록의 봄은 대자연의 오묘한 생명의 질서가 올해에도 어김없이 찾아왔음을 알려주는 표상이자 약속이다.
옛 사람들은 자연의 재해를 신을 저버린 대가로 받아들였다. 성서를 비롯한 여러 고대 이야기에서 홍수와 가뭄은 인간의 탐욕과 죄악으로 말미암은 신의 징벌로 그려지고 있다. 자연은 신의 모습이기 때문에 함부로 거스르지 말아야 하는데 이를 어긴 탓에 인간들은 봄을 빼앗기고 푸른 생명을 박탈당했다.
로이 로버츠(Royee Roberts) 작, <Amber Hills>
오늘날 인간들이 저지른 여러 환경 훼손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심각한 후유증을 낳고 있으며, 급기야 기후 변화까지 초래하고 있다. 올 봄에도 냉해를 비롯한 여러 이상기후로 '봄 같지 않은 봄'을 겪고 있다. 잦은 봄비와 냉랭한 날씨로 한 해 농사를 망친 농민들의 얼굴에는 비탄이 가득하며, 봄꽃이 채 피기도 전에 바람에 떨어져 양봉업자들이 파산하고 행락객의 발걸음이 우울해졌다. 자칫하면 봄철을 빼앗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든다.
미래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 여러 SF 영화에서, 하늘은 대부분 잿빛이고 땅에는 푸른 식물들은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지하의 은신처에서 지내거나 황량한 벌판을 배회하고 있다. 어떤 극단적인 작품들은 지구가 멀지 않은 미래에 파괴되어 살아남은 인류가 다른 별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이들 영화들은 인간이 푸른 세상과 풍요로운 자연을 장차 상실하게 될지 모른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태초에 가장 완전하고 순수하며 푸르렀을 '첫 봄날'의 경치를 눈에 그리며 오늘날 몸살을 앓고 있는 산과 들의 봄 정경을 바라본다.
18세기 후반 고전주의 시대를 살다간 대 작곡가 '하이든(Franz Joseph Haydn:1732-1809)'은 흔히 교향곡을 비롯한 기악곡 양식의 완성자로 평가받고 있으나, 성악의 측면에서도 매우 비중있는 업적을 남긴 작곡가였다. 그가 지은 열네 곡의 미사곡은 바로크에서 고전을 지나 낭만을 예고하는 당대의 충만한 걸작선이며, 말년에 작곡한 두 곡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와 <사계>는 '헨델'의 <메시야>에 필적할 만한 마스터피스로 기억되고 있다.
'하이든'은 말년에 두 차례 영국에 방문하여 예우를 받곤 했는데, 과거 '헨델'이 작곡했던 여러 오페라와 오라토리오들을 듣고 깊은 감동을 느꼈다고 한다. 특히 그의 오페라 <이집트의 이스라엘인>과 오라토리오 <메시야>는 깊은 감흥을 받아 눈시울을 적시면서 "헨델이야말로 우리들 중 참다운 거장이다"라고 감탄하였다고 한다. 또한 그 자신도 말년에 들어 종교에 더욱 애착을 가져 필생의 역작이 될 종교 성악곡을 작곡할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리하여 작곡된 두 곡의 걸작 오라토리오가 바로 <천지창조>와 <사계>인데, 먼저 작곡된 <천지창조:Die Sch pfung>가 천사들에 의해 신의 놀라운 창조업적을 찬송한 작품이라면, <사계:Die Jahreszeiten>는 순박한 농민들에 의해 찬미된 신과 대자연에 대한 찬가로 볼 수 있다.
'하이든'은 <천지창조>를 1796년 10월에서 1798년 4월에 이르는 기간에 완성하였다. 대본은 독일어 성경의 창세기 1장에 나오는 기사와, '존 밀턴'의 <실락원>을 참고로 직접 그가 지었다. 그는 작곡기간 동안 경건하고 신심에 북받쳐 몰입하고 정성을 기울였다고 전한다. 초연은 1799년 3월 19일 '비엔나'에서 이루어졌고, 많은 갈채와 찬사를 받았다.
총 3부, 34곡으로 되어 있는 이 곡은 창세기에 쓰여진 대로 엿새 간에 걸친 창조주의 천지창조의 위엄과 권능을 제 1부와 제 2부에서 세 천사(가브리엘과 우리엘, 라파엘)이 노래하고, 제 3부에서는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가 찬양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장대하고 웅장한 대서사극은 바로크의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고전양식을 완결하면서 낭만파 음악을 예고하는 혁신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 시대를 관통하는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성악뿐 아니라 반주부 관현악에서 탁월한 균형과 조화를 보이고 있으면서 창의적인 기법을 두루 발휘하고 있어 성악으로 이루어진 교향적 작품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고전시대를 살면서 가장 그 시대정신에 부합되는 음악생애를 살았던 그가 말년에 신과 인류에게 바친 빛나는 헌정물이 바로 이 오라토리오가 아닌가 여겨진다.
제 1부의 여덟 번째 곡으로 나오는 이 곡은 천지창조 사흗날에 창조주가 대자연을 창조한 후 대천사 가브리엘(소프라노)이 찬양하며 부르는 노래로, 신이 마련한 아름다운 대지와 초원을 평화롭게 바라보면서 읇조리는 평화스러운 목가(牧歌)풍의 아리아이다.
다음에 그 가사를 옮긴다.
Nun beut die Flur das frische Gruen Dem Auge zur Ergotzung dar. Den anmutsvollen Blick Erhoht der Blumen sanfter Schmuck. Hier duften Krauter Balsam aus, Hier sproßt den Wunden Heil. Die Zweige krummt der goldnen Fruchte Last; Hier wolbt der Hain zum kuhlen Schirme sich, Den steilen Berg bekront ein dichter Wald. |
거친 들이 변하여 푸른 초원이 되었네. 나의 두 눈이 흥겨워하네, 주위의 매혹적인 광경에. 꽃들은 향기를 뿜어내 새로운 힘과 기운을 주네. 휘어진 가지마다 금빛 열매 열리고 무성한 파란 잎이 달려 곳곳에 그늘을 이루고 푸른 숲이 물결쳐 산등성이마다 펼쳐져 있네. |
청아하고 화사한 음색으로 노래되는 소프라노의 찬가는 천상과 같은 이상향(理想鄕)에서 누리는 봄의 정경을 지상에서 느끼게 해 주며, 또한 가장 순수하고 완전했던 창조 당시의 봄철을 상기시켜 준다. 빛나고 화사한 봄이 이 땅에서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노래를 들어본다. (*)
(연주자) 도로테아 로쉬만(Dorothea Roschmann), Soprano
니콜라스 아르농쿠르(Nikolaus Harnoncourt)지휘, 콘첸투스 무지쿠스 비인(Concentus Musicus Wi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