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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과 뮤즈

봄소식 봄노래(13) 마스카니의 오렌지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작성자이성준|작성시간11.04.19|조회수232 목록 댓글 0

봄소식 봄노래(13)

    귀향길에서 빼앗긴 봄,
'마스카니'의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황금찬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석양은 먼 들녘에 내리네.
염소의 무리는 이상한 수염을 흔들며
산을 내려오네.

종을 울리네.
황혼의 묏새들이
종소리를 따라
바람에 날리는 억새꽃같이
호숫가 숲으로 날아드네.

머리에 가을꽃을 꽂은
소녀들이
언덕 위에 서서
노래를 부르네.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교회의 종소리는 우리들을 부르네,
이 석양이 지나면
또다시 우리들은
아침을 맞네.
                                       오세효 작, <Liszt를 위한 발라드>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지고
촛불 위에 눈이 내리네,
눈 위에 순록의 썰매는 달리고.
그리하여 우리들도
어제의 소녀가 아니고
오렌지 향수가 하늘에 지듯
우리들의 향기도 지리.

종이 울리네.
숲 속에서 새들이 무상을 이야기하네.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소년들은 노래를 부르네.

 예술가곡으로 차려 본 봄맞이를 마무리하고 이제 오페라 속에 등장하는 여러 노래들을 간추려 모아 보다 짙고 화려한 봄의 향연을 즐기고자 한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봄의 전령사를 맞이하는 곳은 지중해와 접한 남부의 라틴 삼국,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그리고 이탈리아이다. 그 중에서 특히 이탈리아는 장화 모양으로 길게 아래로 뻗은 반도가 아프리카 해안까지 닿아 있어서 더욱 봄의 향기가 가득 넘치는 고장이다.
 아프리카 북단에서 지중해를 넘어 불어오는 마르고 더운 바람, '시로코(Sirocco)'가 이탈리아 산록을 푸른빛으로 적시는 3.4월, 이탈리아인들은 그 무렵 찾아오는 부활 절기와 함께 성대하고 떠들썩하게 봄의 잔치를 준비한다. 
 
 지중해 연안국은 세 가지 과일로 유명한데, 바로 올리브와 포도, 그리고 오렌지이다. 특히 오렌지는 지중해의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탐스럽게 영글어 그 황금색 빛깔과 풍성한 향미를 자랑하고 있다. 이탈리아 남부의 오렌지는 다른 지역에 비해 유난히 주황빛으로 붉어 이른바 '핏빛 오렌지(Arancio Sanguigo)'라고 부르기도 한다. 흡사 이탈리아인들의 다혈질적이고 낭만적인 성향을 그대로 반영하는 느낌이다.
 이탈리아는 2월과 3월 사이에 오렌지를 수확한다. 오렌지가 천지에 가득한 데 봄바람이 불어온다. 이른바 '오렌지 향기가 봄바람에 날리는' 것이다. 오렌지와 함께 유럽의 봄은 시작되었다. 알프스산맥 이북에도 오렌지 향기에 묻혀 봄소식이 곧 찾아갈 것이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시기의 이탈리아는 혼란과 격동의 시기였다. 1971년 '샤르데냐(Sardena)' 왕국의 '비토리오 엠마누엘레(Vittorio Emmanuelle)' 2세에 의해 통일된 이탈리아 반도는 얼핏 통합된 것처럼 보였으나 공업지역인 북부와 농업지역인 남부사이의 경제.문화적 격차는 이탈리아 국내를 남북으로 양분시켜 극심한 갈등과 충돌을 야기했다. 우리 근대사 쪽에서 보면 호남의 차별성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결과 시칠리아와 나폴리를 포함한 남부지역에서 공산주의가 발호하였고 마피아가 출현하였으며, 베리스모 문화운동이 일어났다.

 

 

 이른바 '베리스모(Verismo)'는 문학과 예술의 귀족적 분위기와 고상한 구조를 타파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낭만적 즉물주의(卽物主義)'라고도 부르는 이 경향은 각종 신화나 영웅담을 거부하고 서민적이고 일상적인 생활을 묘사하기를 즐겨한다. 오페라에서도 이와 같은 운동이 일어났는데, 과거 오페라가 영웅의 비극적인 운명이나 궁정의 생활상을 담았는 데 비해, 인간이 지닌 추악상이나 비윤리적 측면까지 포괄하는 주변 생활의 실제 모습을 음악화하는 데 주력하였다. 표현상에서도 종래의 화려한 콜로라투라(Coloratura) 풍 아리아 대신에 레치타티보나 아리아, 합창 등이 자주 쓰여져 오페라의 영역을 한 단계 낮추고 민중의 삶 속에 융화시켰다.

 


 1890년 오페라 공모에서 한 청년 작곡가가 최우수상을 차지하였는데, 그의 작품이 바로 <카발렐리아 루스티카나:Cavalleria Rusticana>였다. 그의 이름은 '피에트로 마스카니(Pietro Mascagni:1863-1945)'였다. 그는 이 오페라 당선으로 일약 유명해졌으나 후속작으로 비중있는 곡을 남기지 못해 결국 이 한 곡으로 기억에 남는 단작(單作) 작곡가가 되었다. 비록 한 곡으로 유명해지긴 하였으나 워낙 짜임새있고 잘 만들어진 오페라이기 때문에 그의 명성을 떠받치기에는 충분하다는 평가이다.

 곡명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여 국내 서적이나 음반설명에 여러 다양한 해석이름이 붙는데, <시골기사>, 혹은 <시골의 기사도>라는 말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카발레(Cavalle)'를 '기사(Cavally"경기병, 또는 기사)'라고 해석한 결과이다. 물론 맞는 번역이지만 시대가 중세가 아닌 19세기 말이므로 격에 맞지 않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제대 군인>, <재향 군인>이라고도 표현한다. 이는 오페라 줄거리가 제대한 군인을 소재로 그린 드라마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으나, 원 제목과는 너무 동떨어진 기분이 든다. 그러므로 <시골 군인>, 또는 <시골출신 군인>이라고 해석하는 편이 제일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그 개략적인 줄거리이다.

 

부활절 아침, 시칠리아 섬. 하루 동안에 벌어지는 사건이다. (그래서 1막 뿐인 간단한 오페라이다.) 마을에 제대한 젊은 군인 '뚜리두(Turiddu:테너)'이 돌아온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인 '로라(Lola:메조소프라노)'가 있었으나, 그가 군대에 간 사이에 마부 '알피오(Alfio:바리톤)'가 그녀를 차지해 결혼해 버렸다. 고향에 돌아오니 이미 자신의 애인은 이미 한 사람의 아내가 된 것이다. 결국 '뚜리두'는 다른 여인 '산뚜짜(Santuzza:소프라노)'와 약혼한다.  그러나, '뚜리두'는 이미 남의 아내가 된 '로라'를 잊지 못하고 매일같이 찾아가고, 이것을 지켜 보는 '산뚜짜'는 '뚜리두'가 야속할 뿐이다. 어느 날 '뚜리두'는 다시 집을 나선다. 그녀는 '뚜리두'에게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올 것을 요구하지만 '뚜리두'는 그녀를 뿌리치고 '로라'에게로 달려간다. 그때 '알피오'가 등장하며 '산뚜짜'는 순간 그에게 모든 사실을 얘기해 버린다. '뚜리두'와 '로라'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알게 된 '알피오'는 마침내 격분하여 반드시 복수할 것을 맹세한다. '산뚜짜' 순간 참지 못한 이유 때문에 벌어지게 될 이 비극에 대해서 두려워한다.

 부활절 미사가 끝나고 모든 사람들이 마을 광장의 '뚜리두'의 술집 앞에 모여 축배를 든다. 이때 '알피오'가 등장하자 '뚜리두'는 그에게 술을 권하지만 '알피오'는 그 술을 거절하니, '뚜리두'는 '알피오'의 귀를 물어뜯어 결투를 신청한다. '알피오'는 마을 뒤 공터로 향하고 '뚜리두'는 어머니에게 '산뚜짜'를 부탁한다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알피오'와의 결투를 위해 나간다.
 이윽고 마을 아낙네의 비명이 들린다. '뚜리두'는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된다.

어머니와 '산뚜짜'는 절규하며 조명은 꺼지고 막은 내려온다.

 

 

 이 악극은 귀향한 군인이 어긋난 운명으로 인해 사랑하던 이를 잃고 그의 생까지도 비참하게 마감해야 하는 참담한 비극이다. 찬란한 봄과 부활절을 배경으로 하루 동안 펼쳐진 이야기를 소재로 만들어진 이 음악 드라마는 인간 삶의 부조리함과 운명의 냉혹함을 일깨워주는,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이야기이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오래 전에 상영되었던 <디어 헌터:Deer Hunter>라는 영화에 등장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세 젊은이는 베트남 전장으로 떠났는데, 그들의 운명이 제각기 엇갈린다. '마이클'은 무사히 귀향하나, 반신불구가 된 '스티븐'이 그를 반길 뿐이고, '닉'은 베트남에 남아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하다 총으로 목숨을 잃었다. '마이클'은 반신불수 남편 '스티븐'의 아내 '안젤라'와 잠자리를 같이 한다. 전쟁으로 인해 비운을 겪고 만신창이가 된 젊은이들의 고뇌는 군에서 제대해 돌아와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뚜리두'의 비운과 일맥상통하다.

 

 일찍이 시인 정지용은 고향을 다시 찾는 일이 부질없는 것임을 그의 시 <고향>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오랫동안 타향살이를 하다가 고향을 찾는 일은 마치 인생에서 봄을 되돌려 받는 것과 같다. 춥고 서러운 외지에서 십 수년을 떠돌다가 늘그막에 고향을 찾는 이들은 예전에 고향의 즐거운 추억과 산천, 사귀었던 친지와 동무들울 만나고 싶어 하나, 이미 세월 속에 사람은 떠나고 추억도 사라져 버렸다. 오직 산천만 변함없이 남아 꽃을 피우고 새를 품고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고향을 찾는 나그네가 맞이하는 고향의 봄은 이미 봄의 느낌이 아닌 것이다. 고향의 정과 사연을 놓쳐버린 귀향자는 오페라의 '뚜리두'처럼 고향에서마저 냉대받고 봄철마저 빼앗긴 채 쓸쓸히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합창곡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Gli aranci olezzan>는 서곡이 연주되고 막이 올려지면 곧바로 시작된다. 곡은 매우 평화스럽고 전원적이다. 교회 종소리가 은은하고 청아하게 울려 퍼지면서 무대에 마을 청년과 처녀들이 나타나 군무(群舞)를 추면서 노래한다. 여성과 남성, 그리고 여성이 번갈아 화답하듯 노래를 부르는데 그 분위기가 말할나위 없이 온화하고 따사롭다. 가사 또한 지극히 평온하고 사랑스러워 이 오페라 줄거리의 비극적인 결말과는 매우 동떨어진 느낌이 든다. 그런 까닭에 FM 등에서는 오페라 내용과 상관없이 봄을 알리는 추천곡으로 이 합창곡을 자주 방송에 올리고 있으며, 무대 연주에서도 더러 불려지고 있다.

합창 원어와 발음, 해석은 다음과 같다.

 

 

 Gli aranci olezzano   글리 아란치 올레짜노      
 Sui verdi margini,      수이 베르디 마르지니,     
 Cantan le allodole      칸탄 레 알로돌레          
 Tra i mirti in fior;        트라 이 미르티 인 피오르;

 

 Tempo si mormori     템포 시 모르모리          
 Da ognuno il tenero    다 오뉴노 일 테네로      
 Canto che i palpiti      칸토 체 이 팔피티
 Raddoppia al cor.       라도삐아 알 코르.
 
 In mezzo al campo    인 메쪼 알 캄포
 Tra le spiche d'oro    트라 레 스피체 도로
 Giunge il rumor         지우녜 일 루모르
 Delle vostre spole,     델레 보스트레 스폴레,

 

 Noi stanchi               노이 스탄치
 Riposando dal lavoro 리포산도 달 라보로
 A voi pensiam,          아 보이 펜시암,
 O belle occhi-di-sole.오 벨레 오끼 디 솔레.

 

 A voi corriamo           이 보이 코리아모
 Come vola l'augello   코메 볼라 라우젤로
 Al suo richiamo.        알 수오 리치아모
 
Cessin le rustiche      체신 레 루스티체
Opre: la Vergine         오프레 라 베르지네
Serena allietasi          세레나 알리에타시
Del Salvator;              델 살바토르;

 

Tempo si mormori      템포 시 모르모리
Da ognuno il tenero     다 오뉴노 일 테네로
Canto che i palpiti       칸토 체 이 팔피티
Raddoppia al cor.        라도삐아 알 코르.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석양은 먼 들녘에 내리네.
 염소의 무리는 이상한 수염을 흔들며
 산을 내려오네.

 

 황혼의 묏새들이
 종소리를 따라
 바람에 날리는 억새꽃같이
 호숫가 숲으로 날아드네.

 

 머리에 가을꽃을 꽂은
 소녀들이
 언덕 위에 서서
 노래를 부르네.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교회의 종소리는 우리들을 부르네,
 이 석양이 지나면
 또다시 우리들은 아침을 맞네.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지고
 촛불 위에 눈이 내리네,
 눈 위에 순록의 썰매는 달리고.

 

 그리하여 우리들도
 어제의 소녀가 아니고
 오렌지 향수가 하늘에 지듯
 우리들의 향기도 지리.

 

 종이 울리네.
 숲 속에서 새들이 무상을 이야기하네.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소년들은 노래를 부르네.

 


연주자

피에트로 마스카니(Pietro Mascagni) 지휘,

스칼라 좌 합창단과 관현악단(Orchestra e coro del Teatro alla Scala)
(Milano, 1940)

첨부파일 봄소식봄노래 13 오렌지향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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