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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과 뮤즈

브람스의 <가슴 깊이 간직한 동경>

작성자이성준|작성시간11.05.13|조회수534 목록 댓글 0

낭만에의 동경을 절제된 영혼으로 풀어낸 가곡,
브람스의 <가슴 깊이 간직한 동경>

 

 음악사조에서 고전주의가 이성의 시대였다면, 낭만주의는 감성의 시대였다. 고전주의적 인간이 시공(時空)의 범주를 따랐다면, 낭만주의적 인간은 상상력을 통해 시공을 넘나들었다. 고전적 경향이 음악의 규칙과 조화로운 미를 확립했다면, 낭만적 경향은 격식없고 무한한 음악의 가능성을 확립하였다.

  낭만주의자들이 중시한 동경(憧憬:Anbetung)은 현재를 만족하지 못하고 무한에 대해 끊임없이 갈구하는 태도를 의미하였다. 18세기 말엽 관념론 철학자 피히테(J.G.Fichte:1762-1814)는 무한과 유한 사이에서 유동하는 자아, 무한과 유한 어느 한 영역에 정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그 둘 사이를 유동하고 부유하는 자아의 느낌을 동경이라 하였다. 동경은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욕구를 가질 때 생기는 기대감과 공허함의 복합 감정이다.

  낭만주의자들은 유한한 세계에서 무한을 지향한다. 그런데 무한의 대상은 무지개나 별처럼 멀고 아득하다. 다가갈 수 없는 무한성 앞에서 인간은 한 순간 고뇌하다 또 다시 나아간다. 그렇게 무한은 또 다른 무한을 낳고 동경은 또 다른 동경을 구한다. 그침없는 전전(輾轉)과 무목적의 표박(漂迫)속에서 방황하는 지성은 현실의 모든 책임과 고뇌에서 벗어나 유토피아와 동화, 무의식과 상상, 유년시절과 자연, 꿈과 광기, 기괴함과 신비성의 세계로 도피하려 한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고 낭만에의 순항(順航)은 구속받았다. 낭만주의자들은 이렇게 현실과 상상의 회귀선(回歸線)을 오가며 생을 불태우면서 아름답고 환상적인 음악들을 만들어 내었다.

 

토머스 코일(Thomas Cole) 작, <아르카디아의 이상:Dream of Arcadia,1838>
시와 예술로 찬미된 그리스의 이상향(理想鄕)인 아르카디아는 숱한 낭만주의 예술가들에 의해 동경의 대상으로 칭송되었다.

 

 낭만주의 사조는 거침없이 유럽을 풍미하였다. 한동안 혁명의 기운을 타고 들불처럼 번지던 낭만의 파도는 나폴레옹의 몰락과 빈 체제의 복고주의로 기세가 꺾였다. 독일권을 중심으로 낭만의 대열이 재편되면서 후기낭만의 경향이 무르익었을 때 이를 주도한 음악가가 브람스(J.Brahms:1833-1897)와 바그너(R.Wagner:1813-1883)였다. 베토벤의 적자(嫡子)임을 자처한 이 두 대가는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주관적이었던 낭만의 경향에 진지함과 객관성을 보충하고 고전적인 지성과 융합시켰다. 그러나 두 음악가의 행보는 매우 달랐다. 바그너가 외향적인 변혁을 꾀한 데 비하여, 브람스는 내성적인 진정성을 계승하는 데 치중하였다. 브람스는 독일 음악의 나아갈 방향을 독일 민족의 선율에서 찾고 선배 작곡가들의 악곡 구조에서 구했다. 소나타나 협주곡 등 고전시대의 대표 장르들을 그대로 끌어안고 절대음악의 테두리 속에서 낭만의 자양분을 한껏 이끌어내었다. 그에 반해 바그너는 독일 음악의 진수(眞髓)를 민족의 신화와 기독교사상에서 구했고, 그 서사(敍事)를 낭만적인 팔레트로 물들였다. 그의 극음악은 세기를 앞선 예지와 창조력으로 당대를 압도해 베토벤이 후대에 끼친 영향만큼의 반향을 유럽사회에 끼쳤다.

 

 

 브람스는 독일 전역을 두루 다니며 사색하고 작곡했다. 독일 역대 음악가 중에서 그만큼 독일의 풍광과 그 내면을 잘 아는 작곡가는 없다. 바그너가 독일 신화로 세계인을 감동시켰다면 그는 독일 선율로 독일 음악의 전통을 공고히 하였다. 브람스의 음악은 둔중하고 은근하다. 처음 듣는 이에게 브람스는 희미한 안개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의 음악에는 희비와 고락, 명암과 온랭(溫冷)이 섞여 있다. 기쁘되 비애가 앙금처럼 남아 있고, 구슬픈 가락 속에 희열이 숨어 있다. 그 까닭에 곡을 듣고 난 후의 느낌은 대체로 중성적이다. 그는 그의 소박한 외양과 검약한 태도를 닮은, 내면적이고 진중한 곡들을 지어냈다. 그러기에 그가 만들어 낸 창작물들은 인생의 전환기에 선 중.장년의 정서에 꽤 잘 어울린다.

 

 브람스의 음악은 본질적으로 선율미에 있다. 거의 모든 기악곡에는 선율이 가장 큰 요소로 작용한다. 그의 교향곡들은 치밀한 구성미와 탄탄한 전개방식으로 듣는 이에게 큰 감동을 준다. 그러나 음악이 끝난 후 청중의 귓가에는 선율이 오랫동안 맴돈다. 그런 까닭에 브람스의 가곡은 작곡가의 진면목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장르이다. 그는 1851년부터 1896년까지 45년 동안 200여 개의 독창곡과 100여 개의 중창곡을 지었다. 그의 가곡들에는 독일 민요의 선율이 스며 있다. 그는 노래의 단순성을 강조하여 복잡한 반주를 쓰지 않았다. 반주나 화성이 선율이 손상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조심성을 늘 가지고 가장 정교한 음악 구조를 훌륭하게 짜내는 데 주력하였다. 또한 화성과 성부의 짜임새가 감정의 표출보다 내성적이고 고전적인 기분이 지배적이다.

 그는 슈베르트의 영향을 받았으나 슈베르트는 자신의 감정을 가식없이 표현한 데 비해 브람스는 구성적이며 회화적으로 표현하려 했다. 브람스의 가락은 대부분 진지하고 억제되어 있으며, 고전파적인 장중함과 낭만적인 은근함이 스며있다.

 

 브람스의 가곡, <가슴 깊이 간직한 동경(Gestillte Sehnsucht)>은 "알토와 비올라, 피아노를 위한 두 개의 노래(Zwei Gesange fur eine Altstimme mit Viola und Klavier)" 작품 91의 첫 번째 곡이다. 그의 나이 서른 살 때 착수했는데, 20년 후인 1884년 여름에 완성되었다. 서랍 속에 머물러 있던 초고를 꺼낸 브람스는 아버지와 도보여행을 하던 추억이 서려 있는 곳, 스틸리아(Styria)의 뮈르츠슐라크(M rzzuschlag)에서 이 악보의 마침표를 찍었다.

 

스틸리아 지방 뮈르츠슐라크의 풍광

 

 오스트리아 산악지방인 스틸리아는 세계 최초의 산악철도인 젬머링(Semmering) 철도가 통과하는 풍광이 뛰어난 곳인데, 매년 여름이면 스키와 휴양을 즐기려고 많은 이들이 방문한다. 인구 9천 명의 소도시 뮈르츠슐라크는 소설 <피아노 치는 남자(The Piano Teacher and Lust)>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여류 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Elfriede Jelinek:1946-)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 가곡의 가사는 프리드리히 뤼케르트(Friedirich Rueckert:1788-1866)가 지었다. 뤼케르트는 독일의 슈바인푸르트(Schweinfurt)에서 태어나 1866년 노이세스(Neusess)에서 타계한 독일의 대표적 서정시인이자 동양학자였다. 그는 뷔르츠부르크(W rzburg)와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대학 등에서 법률과 언어학, 철학을 공부했으며, 에어랑엔(Erlandgen)대학에서 동양학 교수를, 베를린(Berlin)대학에서 문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그가 살았던 시대 중 1820년에서 1850년 사이의 30년 간은 정치적 혼란으로 불안했던, 이른바 '비더 마이어(Bieder Meier)'시대였다. 더욱이 '3월 혁명 이전(Vormaerz)'의 시기는 근대화가 저지되고 시민의 자유가 억압되던 암울한 시기였다. 이러한 때에 문인들은 정치 현실을 외면하고 전원에서 안주하며 서정적인 작품들을 쓰기게 급급하였다. 뤼케르트 또한 서정적 성향의 시집을 편찬하고 동양학에 몰두하며 시절을 흘려보냈다. 그는 언어의 뜻보다 그 울림을 중시하여 후일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에 영향을 주었다. 섬세하고 청정한 그의 시는 인생을 체념한 이가 자연을 통해 위안을 얻고자 하는 느낌의, 우울하면서도 명징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페르시아 문학의 한 형식인 마카마트(Maqamat)를 도입하여 새로운 시문의 형식을 창출하기도 하였다. 그의 시들은 브람스를 비롯해 슈베르트(Franz Schubert), 슈만(Robert Schumann),휴고 볼프(Hugo Wolf), 말러(Gustav Mahler),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알반 베르크(Alban Berg) 등의 음악가들이 가사로 채용하고 있다.

 

 곡의 가사와 해석은 다음과 같다.

Gestillte Sehnsucht

 

 In gold'nen Abendschein getauchet,
 Wie feierlich die Waelder stehn!
 In leise Stimmen der Voeglein hauchet
 Des Abendwindes leises Weh'n.
 Was lispeln die Winde, die Voegelein?
 Sie lispeln die Welt in Schlummer ein.

 

 Ihr Wuensche, die ihr stets euch reget
 Im Herzen sonder Rast und Ruh!
 Du Sehnen, das die Brust beweget,
 Wann ruhest du, wann schlummerst du?
 Beim Lispeln der Winde, der Voegelein,
 Ihr sehnenden Wuensche, wann schlaft ihr ein?

 

 Ach, wenn nicht mehr in gold'ne Fernen
 Mein Geist auf Traumgefieder eilt,
 Nicht mehr an ewig fernen Sternen
 Mit sehnendem Blick mein Auge weilt;
 Dann lispeln die Winde, die Voegelein
 Mit meinem Sehnen mein Leben ein. 

 가슴 깊이 간직한 동경

 

  금빛의 저녁햇살에 잠겨,
  숲은 얼마나 장엄하게 서 있는가!
  새들의 상냥한 목소리들 속으로
  저녁바람이 부드럽게 한숨처럼 섞여드네.
  바람은, 새들은 무엇을 속삭이는가?
  그들은 세상에게 잠들라고 속삭이네.

 

  그대, 이 가슴 속에서
  잠시의 쉼도 멈춤도 없이 끊일줄 모르고,
  솟아나 오르는 너희 갈망들이여!
  너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동경이여,
  바람과 새들은 속삭이는데,
  너는 언제나 멈추고, 언제 잠들건가?
 
  아! 금빛 날개를 단 내 영혼이
  저 멀리 노을진 지평선을 방황하지 않고,
  내 갈망하는 눈이
  저 먼 하늘의  외로운 별을 찾지 않을 때;
  그 때 바람은 속삭이고, 새들은 지저귀며
  모든 나의 갈망도 그때는 잠들리라. 

 

아다지오 에스프레시보(dagio espressivo:느리고 표정을 다하여), 라 장조의 2/4박으로 시작되는 이 곡은 중성(中性)의 피아노, 알토 음역의 비올라와 소프라노 성부(聲部)가 만나 독특하고 미묘한 정서를 만들어 내는, 여늬 가곡에서 볼 수 없는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 파트가 각자의 영역을 끌고 나가고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두 반주 악기가 성악의 선율과 가사를 받춰주고 있다. 그러나 피아노보다는 비올라의 비중이 더 강하다. 악기와 목소리 모두 시종일관 긴 호흡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정해진 박자를 그대로 따르기보다 적절하게 소스테누토(sostenuto:선율을 충분히 길게 끌며)와 테누토(tenuto:음을  길게 하며)로 템포를 조절하여 마치 시 구절을 읽다가 멈추어 사색하는 듯한 여유를 느끼게 하고 있다.

 

 곡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피아노의 한숨소리에 의해 이끌려진 비올라는 유려하고 부드러운 선율을 조용하고 숙연하게 연주한다. 성악이 호흡을 머금었다가 차분하게 울리면 비올라는 성악의 선율을 한 박자 뒤에서 어루만지며 한편으로 돕고 또 한편으로 곡의 정서를 주도하면서 동행한다. 비올라는 대위법에 입각한 알토 성부를 따르면서 성악의 선율을 비올라가 예고하는가 하면, 오블리가토(Obbligato:한 성부에 다른 악기가 곁들여져 장식하는 것)나 에피소드(Episode:주제 소절의 토막부분)로 살짝 변형시켜 장식하기도 한다. 명상적이고 내성적인 분위기가 이어지다가 ‘저녁바람이(Des Abendwindes)’에서 살짝 격앙되었다가 ‘무엇을 속삭이는가(Was lispeln)’에서 비올라의 여린 오블리가토로 다시 진정된다.

 비올라의 긴 끈음이 하강한 후 곡은 2부의 그대, ‘이 가슴 속에서(Ihr Wünsche)’로 시작하면서 잠시 분위기를 일신한다. 가사의 내용대로 잔잔했던 성악의 정조가 설레임과 간절함으로 바뀌며, 두 개의 악기 또한 역동적인 박자를 매긴다. 한 바탕 마음의 격정이 사라진 후 성악과 반주는 원래의 빠르기로 돌아온다.
 3부의 ‘금빛 날개를 단 내 영혼이’ 부분은 1부와 비슷한 성격으로 진행되나, 이전보다 다소 밝고 외향적인 느낌이다. 말미의 가사 ‘모든 나의 갈망도 그때는 잠들리라(Mit meinem Sehnen mein Leben ein)’에서 반주부와 성악이 디미누엔도(diminuendo:차차 여리게)로 잦아지다가 비올라와 피아노의 후주가 시적 화자의 심정을 곱씹듯 잠시 망설인 후 곡은 조용히 끝난다.


 (연주자 소개>

메조 소프라노 자넷 베이커(Janet Baker) 비올라 세실 아로노비츠(Cecil Aronowitz) 피아노 안드레 프레빈(Andre Previn)

 

 

 

 

첨부파일 가슴깊이 간직한 동경.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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