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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우울, 한낮의 우물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22.09.24|조회수41 목록 댓글 0

깊은 우물에 갇혀 있을 때가 있습니다. 햇빛이 세상을 덮어도 우물 속은 어둡습니다. 구름이 흐르지만 우물은 고여 있습니다. 바람이 불지만 우물 벽은 눅눅합니다. 비가 내리면, 똑같이 비를 맞습니다. 우물 밖이 아무리 좋아도 우물 속은 좋을 게 없고, 우물 밖 상황이 나쁘면 우물 속도 똑같이 안 좋습니다.

 

어쩌다가 우물에 갇히게 되었을까요. 옛날 시인은 죄를 지었다고 고백합니다. 「내 죄의 벌이 나를 짓누르니, 이 무거운 짐을 내가 더는 견딜 수 없습니다(시38:4)」 내가 죄를 지었고, 벌을 받아 감옥 같은 우물에 갇혔다고 시인은 생각합니다.

 

사람이 다 죄인이라, 자신을 돌아보고 앞길을 찾는 건 착한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착한 마음을 읽어주신다고 믿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읽어주실 착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아, 주님, 나의 모든 탄원, 주님께서 다 아십니다. 나의 모든 탄식, 주님 앞에 숨길 수 없습니다(시38:9)」 “나의 모든 탄원”, “나의 모든 탄식”을 감추지 않고 쏟아냅니다.

 

우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한낮에도 어두운 우물에서, 사방이 막혀 흘러 갈 수 없는 우물에서, 폭염에도 눅눅한 우물에서, 우리 인생이 벗어날 수 있을까요? 우물에 갇혀 있다는 느낌에서, 깊은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요1:5).」

 

빛이 우물 속 깊은 어둠을 비칩니다. 한낮에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겐 남편이 다섯 명이었습니다. 남편이 다섯 명이란 말은 적어도 네 명에게 버림받았다는 뜻입니다. 사연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깊은 우물에 갇혀 있어 한낮에도 우울한 인생입니다. 우울하기만한 한낮에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습니다. 물을 길으러 한낮을 걸어나온 사마리아 여인이 말을 맞추려 한밤 중에 예수를 찾아온 유대인 니고데모보다 우월합니다. 

 

내가 가끔 우울한 까닭은 밤에 잠들지 못한 채 말을 찾기 때문일까요. 나는 말 밖에 할 줄 모르는 유대인 니고데모를 닮았습니다. 깊은 우물에 갇히지 않고, 한낮에 우물에서 물을 긷는 사마리아 여인을 닮아야합니다. 한낮의 우물 곁에 예수께서 계십니다. 나를 위해 말을 맞추기보다, 예수에게 물을 떠줄 때, 빛이 비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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