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이처럼 뉴욕의 지하세계를 가장 먼저 통일하고 그 왕좌를 차지한 사람은 찰스 루치아노가 아니라 살바토레 마란자노였다. 그러나 오늘날 마란자노의 이름은 역 속에 묻혀버린 반면, 찰스 루치아노의 이름은 아직도 유명하여 1998년 말에는 미국의 유력지인 <타임>에 의하여 다시 각광을 받는 등 그 위력을 떨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살바토레 마란자노가 한 일이 이탈리아-시실리계 갱단을 통일시킨 데 국한하여 있었던 반면 루치아노가 한 일은 차원을 달리하여, 전 미국의 조직범죄단을 결속시킨 데에 있었던 때문이다. 유태계 갱들에 대한 마란자노의 태도가 어떠하였는지 확실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그간 그에게서 풍겼던 보수적인 태도로 보아 이탈리아-시실리 갱을 제외한 다른 갱들에 대하여 그리 호의적이지는 못했다는 것이 올바른 추측일 것이다. 따라서 마란자노가 뉴욕의 이탈리아계 갱단 조직을 통일했다고 하더라도 아직도 그곳에는 많은 불안 요인이 상존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찰스 루치아노의 위업은 단순히 마란자노의 그것을 이어받은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계, 유태계를 총망라하여 미국의 지하세계를 통일함으로써 이러한 불안 요인을 없애고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사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마란자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실로 대단한 업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루치아노에 의하여 세워진 그 범죄 왕국은 오늘날까지도 그들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전 미국 범죄 신디케이트(Syndicate)를 발족시킨 찰스 루치아노의 위업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뉴욕 지하세계의 평화는 실로 수년 만이었다. 살바토레 마란자노가 비교적 늦은 시기인 1927년에 미국으로 건너왔음에도 불구하고 귀제뻬 마세리아를 제거하면서 단기간 이내에 뉴욕 암흑가의 패권을 차지하여 보스 중의 보스로 올라선 것은 그 자신의 능력을 십분 입증한 것이다. 시실리 마피아의 능력을 잘 알 수 있는 좋은 예가 아닐까 싶다. 비록 카스텔라마레 사람들의 전적인 협조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이끌어낸 데에 바로 보스의 능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자신이 보스 중의 보스로 남아있기 위해서는 야심을 가진 젊은 갱 몇 명은 없어져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마란자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문제는 찰스 루치아노였다. 마란자노는 그의 승리 중 크나큰 부분을 루치아노에게 빚지고 있었으며, 그 사실은 그들 세계의 누구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루치아노의 큰 야망과 그에 걸맞는 대담성, 그리고 교활함은 역시 지하세계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마란자노는 마세리아가 죽은 뒤에 곧 앞으로 제거해야 할 자들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었고, 리스트에 오른 이름은 대개 루치아노 그룹의 멤버들이었다. 그 중 제일 첫 번째 줄에 적혀진 것이 찰스 루치아노와 그의 오른팔인 비토 제노베제였다. 루치아노가 자기의 할 일을 다한 지금, 그의 이용가치는 없어진 반면 그로 인하여 생길 수 있는 트러블의 가능성은 매우 높아진 것이 현재의 상황이었다. 이것은 그 자신이 내건, 형제를 죽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그들의 세 번째 규칙을 어기는 일이었으나 아무래도 야심찬 루치아노와 공존할 수 없다는 판단을 마란자노는 내린 것이다.
비토 제노비제
그러나 루치아노도 바보가 아니었고 자신이 처한 위험스러운 환경을 아주 잘 인식하고 있었다. 즉, 간단하게 말하면 이때의 상황은 하늘 아래에서 두 영웅 중 한 사람은 없어져야만 하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리고 마란자노의 아래에서 계속 상납금을 바쳐가며 평생 지내는 것 역시 그의 스타일과는 맞지 않았다. 또한 그보다도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마란자노의 사업 감각이었다.
금주법은 곧 폐지되려 하고 있었고, 한시 바삐 밀주사업에 버금가는 다른 사업 아이템을 개발해내지 못하면 수입에 큰 차질이 생길 우려가 있다는 것이 루치아노의 판단이었던데 반해, 마란자노는 이탈리아인이 아니면 조직원이 될 수 없다는 등 고리타분한 주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루치아노의 생각에는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사업을 통한 이윤, 즉 돈이었으며 혈연이나 지연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가 보기에 카포 디 카피, 마란자노는 사업을 제대로 경영할 능력이 없는 답답한 경영주라고 할 수 있었다.
금주법에 반대하는 시위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현실이었다. 마란자노는 시실리 인의 우수함을 과신하여 이탈리아-시실리 갱 이외에는 전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었으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아, 뉴욕만 하더라도 사우스 브롱크스의 덧치 슐츠(Dutch Schultz, 원래 이름은 아더 플리겐하이머, 닉네임은 더치맨), 맨해튼의 루이스 부챌터(Louis Buchalter, 닉네임은 랩케(Lepke) 또는 판사 루이스)와 같은 무시할 수 없는 유태계 갱의 세력이 존재하고 있었고, 뿐만 아니라 다른 각 도시에도 시실리안 마피아와 거의 대등한 세력을 자랑하는 유태계의 갱단이 활약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덧치 슐츠
루이스 부챌터
이들을 대략 살펴보면 뉴저지 주의 느위크 시에는 론지 즈윌먼(Longy Zwillman, 원래 이름은 아브너 즈윌맨)이 있었고, 클리블랜드에는 모리스 달릿츠(Morris Dalitz)가 있어 메이필드 로드 갱(Mayfield Road Gang)으로도 불리는 클리블랜드의 이탈리안 마피아와 아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보스톤에는 찰스 솔로몬(Charles Solomon, 닉네임은 킹)이, 미니애나폴리스에는 이사도어 블루멘펠트(Isadore Blumenfeld, 닉네임은 Kid Cann)가, 그리고 디트로이트에는 퍼플 갱으로 불리는 갱단이 있어 이탈리아 갱과 유태계 갱이 연합하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론지 즈윌먼
모리스 달릿츠
찰스 솔로몬
이사도어 블루멘펠트
루치아노는 조직이 이탈리아계로만 유지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루치아노의 측근 중에는 벤자민 시겔이나 마이어 랜스키와 같은 유태인들이 있었고, 루치아노의 이탈리아인 동료인 프랭크 코스텔로는 유태인 여자와 결혼까지 하였을 정도였다. 루치아노가 유태인들에게 호의를 보이고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그의 어렸을 적 기억도 작용하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루치아노는 어렸을 때 모자를 만드는 회사에서 잠시 일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그곳의 사장이었던 유태계 맥스 굿맨은 루치아노를 마치 친아들처럼, 매우 친절하게 잘 대해 주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의 마이어 랜스키
그러나 역시 루치아노가 유태계 갱들을 포용한 것은 대부분 루치아노의 현실 인식 능력이 작용을 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강력한 파워를 가진 보스 중에는 루이스 부챌터나 덧치 슐츠와 같은 유태계의 갱들이 있었다. 조직이 이들을 자꾸 배제시키다 보면 언젠가는 그들과 사업상 충돌이 발생할 것이고, 그것이 이탈리아 갱 대 비이탈리아 갱의 전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본 것이다. 루치아노는 전쟁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업에 미칠 악영향을 싫어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고려해야 할 것은 유태인들의 돈을 만드는 능력이었다. 유태인들의 치부능력은 예로부터 익히 알려진 것으로,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돈을 벌지 못한다면 조직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현재 그의 측근으로 있으며 소년시절부터 쭉 그의 동업자였던 마이어 랜스키를 생각해 볼 때 유태계 갱과 연합해야 할 이유는 더욱 확실해졌다. 랜스키는 루치아노의 재정고문 겸 작전참모로 그 위치를 확립하고 있었고, 조직 내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한지 이미 오래였던 것이다.
루치아노는 마란자노가 주관한 대회가 있은 후 얼마되지 않아 그를 제거하기 위한 모임을 소집하였는데, 여기에는 비토 제노베제, 마이어 랜스키, 벤자민 시겔 등 그와 가장 가까운 부하들뿐 아니라 프랭크 코스텔로, 죠 아도니스와 알버트 아나스타샤, 토마스 루케제, 그리고 마세리아의 부하였다가 현재는 망가노 패밀리의 소속으로 된 카를로 갬비노 등이 초대되었다.
프랭크 코스텔로. 훗날 암흑가의 '수상'으로 정평이 난다.
토마스 루케제. 그는 그를 심복으로 여겼던 마란자노를 배신한다.
카를로 갬비노
마란자노를 제거하자는데 이미 모든 젊은 멤버들의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모임이 가능했던 것이다. 루치아노는 분쟁 없이 사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세상을 원했기 때문에, 마란자노 제거 후 다시 혼란이 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사전에 모든 주요 멤버들의 확실한 동의를 얻고자 이러한 모임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 회합은 클리블랜드에서 열렸다.
계획은 마란자노가 루치아노를 제거하기 위하여 외부로부터 전문가를 고용했다는 정보가 입수됨과 함께 급속히 진행되었다. 마란자노에게 고용된 자는 빈센트 콜(Vincent Coll, 닉네임은 미친 개)이었다. 빈센트 콜은 그의 동생 피터 콜(Peter Coll)과 함께 사납기로 정평이 나있던 아일랜드 갱으로, 사우스 브롱크스와 맨해튼의 일부 지역까지 관리하고 있는 덧치 슐츠의 자리를 노리며 슐츠와 거의 대등하게 싸우고 있던 자였다. 마란자노는 정보의 유츨을 막기 위하여, 또 루치아노에 대한 접근성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이탈리아계가 아닌 히트맨을 고용했던 것이다.
빈센트 콜
피터 콜
그러나 루치아노는 마란자노가 입안한 작전에 대한 모든 정보를 그대로 입수하고 있었다. 마란자노 쪽에 정보원을 심어두었던 것이다. 그가 바로 토마스 루케제였다. 루케제는 갈리아노 패밀리의 언더보스로, 마란자노로부터 깊은 신임을 얻고 있었지만 이미 오래 전에 루치아노에게 충성을 바치기로 마음을 바꾼 사람이었다. 루치아노는 특히 토마스 루케제나 루케제의 어릴 적부터의 친구인 카를로 갬비노 같은 더 젊은 세대의 갱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고 있었다.
루치아노와 멤버들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고 이를 위하여 유태계의 히트맨을 모집했다. 유태인 히트맨을 선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마란자노는 몇 겹의 경호를 받고 있어 접근이 몹시 어려웠으며, 누군가가 힘들게 다가가 그를 사살한다 하여도 암살자가 바로 그 자리에서 죽음을 당할 확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그들은 마란자노에게 당당히 접근할 수 있는 연방 국세청 공무원을 사칭하기로 결정하였고, 당시 국세청에서 근무하는 사람의 대부분이 유태계였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는 유태인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무리 충성하는 부하라 할지라도 자기가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 히트에 참가하는 자는 없다. 만일 보스가 그런 무모한 명령을 내린다면, 그는 어차피 죽을 바에야 이쪽을 배반하고 저쪽 편에 암살계획을 불어버릴 것이 틀림 없을 것이다. 가장 먼저 자기의 목숨부터 보존하려고 하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죽은 뒤의 영광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현실적인 시실리인들은 무엇보다도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피아의 계획된 히트는 암살자의 안전을 최대한 보장하는 계획 아래에서만 시행하는 것이 시실리로부터의 대대로 내려온 전통이었다.
유태계인 마이어 랜스키가 클리블랜드, 보스톤, 필라델피아 등지에서 4명의 적임자를 골라왔다. 루치아노와 마란자노 제거 계획은 랜스키나 시겔, 루이스 부챌터와 클리블랜드의 모리스 달릿츠 등 유태계의 갱들로부터도 전적인 협조를 얻고 있었던 것이다. 마란자노가 득세하여 최종적인 패권을 쥐는 것은, 바로 이들 유태인 갱들에게는 재앙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루치아노 일당들은 뉴욕 교외에다 집 한 채를 빌려서 이들 히트맨들이 국세청 탈세단속반의 행세를 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특별 훈련을 시작하였다. 연방 공무원의 옷차림, 행동거지, 걸음걸이, 말투 등에 대한 철저한 교육이 이루어져 이들이 완전히 공무원처럼 생각하고, 공무원처럼 행동할 수 있게 되었을 무렵 드디어 상황이 벌어진다.
마세리아가 죽은 지 약 5개월이 지난 1931년 9월 9일, 루치아노는 마란자노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데, 사업 이야기가 있으니 비토 제노베제와 함께 다음날 그의 사무실로 나오라는 호출이었다. 이것이 죽음의 호출인 것을 루치아노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 부름에 응하여 마란자노의 사무실로 가면 곧장 죽음이 루치아노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그날 밤 루치아노와 일당은 마지막 예행연습을 실시하였고, 만전을 기하기 위하여 마란자노의 얼굴을 확인시켜주는 역할에 토마스 루케제를 임명했다. 당시 루케제는 마란자노로부터 신뢰가 두터웠기 때문에 그의 사무실에 언제든지 자유롭게 출입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루치아노는 동료들에게 명령하여 마란자노 사후에 멤버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다시 한 번 지시를 내렸다.
다음날이 9월 10일, 마란자노는 뉴욕 센트럴 빌딩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5명의 경호원을 대동하고 루치아노를 제거하기 위하여 초빙한 빈센트 콜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4명의 연방 공무원(이 4명의 히트맨 중 한 명의 이름은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온다. 사무엘 레빈, 닉네임은 레드이다.)이 토마스 루케제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왔다. 그들은 국세청 탈세 단속반이라고 자신들의 신원을 밝혔고, 변호사로부터 국세청 직원의 직접 입회 심문의 가능성에 대하여 이미 브리핑을 받은 적이 있었던 마란자노는 별로 의심도 하지 않고 자기 소개를 하여 신분을 밝히고 말았다.
사무엘 레빈
옆에 서 있던 루케제가 눈치 채이지 않게 고개를 끄덕여 마란자노가 확실함을 확인해주자 2명의 공무원은 경호원들을 무장해제하였고, 나머지 2명의 공무원들이 마란자노를 옆 방으로 데려갔다. 경찰, 보안관, 공무원 등 정부 관리들에게는 폭력으로 저항하지 않는 것이 원래 이들 사이의 원칙이었으므로 마란자노의 경호원들은 가만히 있을 도리밖에 다른 수가 없었다.
마란자노를 옆 방으로 데려간 그들은 소리가 나지 않도록 칼을 쓰고자 하였으나 그가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바람에 결국은 총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경호원들은 밖에서 제압당해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전혀 보스에게 도움을 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일이 끝나고 사무실을 나올 때 히트맨들은 건물로 들어오던 빈센트 콜의 일행과 마주쳤지만 곧 경찰이 들어닥칠 것이라고 알려주자 그들은 그대로 오던 길로 되돌아 나갔다.
살해당한 마란자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