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해서 미란자노의 좋았던 시절은 불과 몇 달로 끝났다. 존경하던 줄리어스 시저를 본받아 지하세계의 황제로 군림하려 했던 마란자노는 결국 루치아노와 랜스키가 마련한,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플롯에 속아 넘어가 운명을 달리하고 만 것이다. 이와 같은 치밀한 작전을 마련하는 것이 바로 시실리인들의 똑똑함이었다. 떼를 지어 다니며 기관총을 쏘아대는 것은 바보들이나 할 짓이었다.
이제는 루치아노를 비롯하여 한 세대 젊은 갱들의 시대가 되었고, 마세리아와 마란자노를 차례로 제거한 루치아노는 그들의 명실상부한 보스 중의 보스였다. 그리하여 다시 한번 형제들의 모임이 소집되었는데 이번의 회합은 시카고에서 열렸다. 알 카포네는 당시 자신이 피고로 되어 있는 중요한 재판이 진행 중인 몸이었지만, 어쨌든 시카고 패밀리가 모든 형제들을 초대한 형식으로 해서 회합은 열렸다.
시카고 중심가의 남쪽에 자리한 블랙스톤 앤 콘그래스 호텔(BlackStone & Congress Hotel)에서 열린 이번의 모임은 마란자노가 주최했을 때와는 달리 높은 단상이 따로 준비되거나 하는 일이 없이 넓은 회담장에 둥글게 마련된 탁자에 참석자들이 다같이 둘러앉은 모양으로 진행되었다. 여기에서는 루치아노의 의견대로 마란자노가 제정한 구도를 그대로 두되 몇 가지 사항만 수정을 하기로 하였는데, 그 첫째가 카포 디 카피 제도를 폐지하면서 대신 위원회를 만든 것이고, 둘째는 각 패밀리에 고문 제도를 도입한 것이 그것이다. 루치아노가 카포 디 카피라는 엄청난 지위의 유혹을 뿌리치고 그 제도를 폐지한 것은 대단한 결단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시카고의 블랙스톤 앤 콘그레스 호텔
카포 디 카피의 제도가 없어진 대신에 뉴욕의 5대 패밀리와 시카고의 카포네 패밀리, 클리블랜드의 밀라노 패밀리, 이렇게 7대 패밀리의 보스들로 이루어진 위원회가 탄생되었고 자연스럽게 위원회의 의장으로는 루치아노가 추대되었다. 마란자노가 관리하던 조직은 죠셉 보나노를 보스로 승격시키고 언더보스로 카르미네 갈란테(Carmine Galante, 닉네임은 미스터 시가)를 임명하였다. 이 일곱 패밀리에게는 각각 최대한의 자치권이 주어졌고 서로간의 토의에 의하여 중요 결정을 내리게 함으로써 과거에 카포 디 카피 한 사람의 전횡으로 말미암아 일어날 수 있었던 부작용을 최대한 막고자 하였다.
카르미네 갈란테, 늘 시가를 입에 물고 있어 그것이 별명이 되었다.
또한 보스에서 언더보스, 카포레짐, 그리고 솔다티로 이어지는 일방적인 명령 체계에서 생길 수 있는 마찰을 없애려고 새롭게 도입한 것이 고문, 즉 콘실리에리 제도였다. 보스가 임명하도록 되어 있는 이 콘실리에리에게는 보스에게 무엇이든 거리낌없이 충고를 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고, 보스는 반드시 콘실리에리의 의견을 존중하도록 하여 조직의 경직성을 어느 정도 완화시키도록 만들었다. 이와 같은 개혁은 모든 젊은 멤버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전해지는 일부 사료에 의하면 마란자노가 죽은 후 하루 이틀 사이에 5-60명에 달하는 마란자노의 추종자들이 미국 전역에서 처형되었다고 하는데,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고 실상은 그와 같은 살육은 없었다고 보는 견해가 더 우세한 형편이다. 그런 처형이 없었을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첫째, 대량 살상은 당국의 이목을 끌게 되고, 당국으로부터 주목받는 것은 루치아노가 바라는 바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며, 둘째 이유는 훗날 루치아노 자신이 구술한 책에서 그러한 처형은 없었다고 본인이 완강하게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로 무엇보다도 마란자노의 오른팔이었던 죠셉 보나노가 한 가문의 보스로 승진되었다는 것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죠셉 보나노는 1965년까지 자기 가문의 보스로 있었고 그 후 아리조나 주로 자리를 옮겨 2002년에 사망하였다.
이리하여 찰스 럭키 루치아노는 마란자노의 뒤를 이어 미국의 이탈리아 마피아의 제왕이 되었다. 보스 중의 보스라는 직위는 공식적으로 사라졌지만 현재 찰스 루치아노가 위원회의 의장이며, 따라서 그가 카포 디 카피라는 데에는 아무도 이의를 달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루치아노의 영도 아래 조직은 면모를 일신하게 된다. 전통을 존중하고 구대륙과의 연결을 유지하면서, 같은 혈통을 지닌 사람들끼리 비밀결사와 같은 단체를 만들어 함께 사업을 하고자 하는 것이 마란자노의 구상이었다면, 찰스 루치아노를 중심으로 한 신세대들의 그것은 수익을 가장 중시하는 기업적인 측면이 강하였다.
또한 루치아노의 비젼은 이탈리안 마피아를 통합시킨 데에서 끝나지 않았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루치아노는 조직이 이탈리아계로만 유지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으며, 그와 뜻을 같이하는 이탈리아 갱인 프랭크 코스텔로, 쟈니 토리오(Johnny Torrio, 닉네임은 ‘리틀 자니’) 등과 함께 이탈리아계를 설득하여 마이어 랜스키, 벤자민 시겔, 모리스 달릿츠 등의 유태계 갱들을 포함한 더욱 큰 규모의 모임을 마련하게 된다. 이때부터 이들의 조직을 마피아와 구별하여 따로 신디케이트(National Crime Syndicate, NCS)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니 토리오
그런데 사실은 이렇게 루치아노와 같은 뜻을 가진 젊은 갱들이 출신 국적을 초월하여 한곳에 모여 회합을 가진 적이 이미 한차례 있었다. 카스텔라마레세 전쟁 이전인 1929년 5월의 일로, 장소는 뉴저지 주 아틀랜틱 시티의 프레지던트 호텔이었다. 살바토레 마란자노가 이탈리아 갱들의 대회를 소집하기 훨씬 이전에 벌써 전미 범죄 조직의 전단계라고 할 수 있는 회합이 소집되었던 것이다. 그때의 모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뉴욕의 프랭크 코스텔로와 쟈니 토리오였고, 여기에 쟈니 토리오의 후계자이자 당시 이미 시카고의 지하세계를 통일하여 시카고에서는 더 이상의 라이벌이 없었던 알 카포네가 강력하게 동조하여 결국 모임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아틀랜틱 시티의 정치적 보스인 에노크 톰슨(Enoch Thompson, 닉네임은 ‘너키’)이 이 회합을 적극 후원하였다고 한다.
에노크 '너키' 톰슨과 미드[보드워크 엠파이어]에서 그의 역할을 했던 배우 스티브 부세미
이때 이 모임에 참석한 인원의 면면을 살펴보면 먼저 뉴욕에서는 찰스 루치아노, 프랭크 코스텔로, 죠 아도니스의 이탈리아 갱과 래리 페이(Larry Fay), 마이어 랜스키, 벤자민 시겔, 루이스 부챌터 등의 유태계 갱, 그리고 오우니 매든(Owney Madden, 닉네임은 ‘킬러’), 프랭크 에릭슨(Frank Erickson)의 앵글로 색슨계 갱이 참석하였고, 시카고에서는 알 카포네가 부하인 제이크 구직(Jake Guzik, 닉네임은 ‘기름진 손가락’)을 대동하고 참석하였으며, 뉴저지 주 느워크 시에서는 론지 즈월먼이, 클리블랜드로부터는 이탈리아계인 메이필드 로드 갱에 소속된 척 폴리찌(Chuck Polizzi, 원래 이름은 레오 버코위츠)와 유태계인 모리스 달릿츠, 루 로스코프(Lou Rothkopf, 닉네임은 ‘루이 아저씨’)가, 디트로이트로부터는 퍼플 갱의 죠 번스타인(Joe Bernstein)이, 미주리 주 캔자스 시티에서는 이탈리아계의 죤 라지아(John Lazia)와 유태인인 솔로몬 와이즈만(Solomon Weissman, 닉네임은 ‘붙잡아 머리를 날리는 자’)이 각각 출석하였다.
래리 페이
오우니 매든, 오른쪽
프랭크 에릭슨
제이크 구직, 러시아 출신의 유태인으로 알카포네의 핵심 부하였다.
루 로스코프
조 번스타인
존 라지아
솔로몬 와이즈만
뉴욕의 프랭크 에릭슨은 유명한 도박사이자 갱인 아놀드 로드스타인(Arnold Rothstein)이 피살된 후 그의 사업을 물려받게 된 사람이고, 역시 뉴욕 출신의 래리 페이는 택시 회사를 비롯하여 수많은 나이트클럽과 레스토랑을 소유하였던 사업가 겸 갱으로 스콧 피츠제랄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모델이 되었던 사람이다.
아놀드 로드스타인
이 회합에서 그들은 몇 가지 안건에 대하여 토의를 나누었는데 이때의 회합은 사실 그곳에서 어떤 일들이 논의되었나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이와 같은 모임이 이루어졌다는 그 사실 자체로 정말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문자 그대로 전국 범죄 신디케이트의 모태였으니 말이다.
모임의 서두에서는 시카고의 알 카포네가 기조 연설을 하였다. 그 연설의 내용은 이제는 더 이상의 싸움을 그치고 서로 협력하여 사업을 해나가자는 것이었다. 유태계 갱, 아일랜드 갱들과의 오랜 헤게모니 쟁탈전을 끝내고, 얼마 전 시카고의 암흑가를 통일한 알 카포네였기에 그러한 말을 꺼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뉴욕에서는 아직 전쟁이 끝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리고 두 가지의 안건이 더 제의되었는데, 둘 모두가 경마도박에 대한 것이었다. 이때는 적어도 밀주사업에 관한한 더 이상의 논의가 필요 없을 정도로 조직 간의 사업 구역이 확실하게 나뉘어진 뒤였던 것이다. 우선 첫 번째의 안건은 마권 영업소를 운영하는 그들의 경마도박의 하부 조직에 보다 조직적인 자금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의 것은 경마 레이스의 정확한 결과를 보다 빠른 시간 내에 확보하기 위하여 유선통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유선통신 서비스에 대해서는 당시 그것을 제공하고 있던 시카고의 사업가 모세 아넨버그(Moses Annenberg)가 직접 카포네와 함께 출석하여 다른 보스들에게 그에 대한 자세한 브리핑을 하였다.
모세 아넨버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