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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마피아]미국 마피아 - 7. 살인주식회사

작성자푸른 장미|작성시간13.11.08|조회수2,611 목록 댓글 0

찰스 루치아노가 마란자노를 제거하자 뉴욕의 지하세계 사람들은 엄청난 태풍이 불고 지나간 뒤와 같은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루치아노가 마란자노와 같은 시실리의 카스텔라마레 출신이며 전쟁기간 내내 마란자노의 오른팔과도 같았던 죠셉 보나노를 함께 숙청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패밀리의 보스로 승진시키며, 보나노가 요청한 카르미네 갈란테의 언더보스 임명을 그대로 인준하자 그 안도감은 더욱 확실한 것이 되었다.

만일 루치아노가 카르미네 갈란테를 인준하지 않고 자기 사람을 보나노 패밀리의 언더보스로 추천하였다면, 그것은 죠셉 보나노를 도저히 믿을 수 없으며, 지금은 피바람을 멈추기 위해서 일단 보류하지만 언젠가는 보나노를 제거하고야 말겠다는 자신의 속마음을 환히 드러낸 것과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카르미네 갈란테는 마란자노, 보나노와 같은 카스텔라마레 출신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어느 정도 긴장을 풀고, 이제는 정말로 다른 데에 신경을 쓰지 않은 채 자기 사업에만 집중할 수가 있었다.

전국 신디케이트는 금주법이 해제된 다음 해인 1934년에 다시 두 번째로 그 모임을 가지게 된다. 이번의 모임은 뉴욕의 월돌프 아스토리아 호텔(Waldorf Astoria Hotel)에서 열렸고 여기에는 앵글로 색슨계와 아일랜드계의 갱도 참가하였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압도적 다수는 이탈리아계와 유태계였다. 이번의 회동은 주최 장소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찰스 루치아노의 주도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뉴욕의 월돌프 아스토리아 호텔

 

루치아노를 비롯하여 뉴욕에서 참석한 프랭크 코스텔로, 쟈니 토리오, 비토 제노베제와 나머지 4대 패밀리의 보스인 죠셉 보나노, 죠셉 프로파치, 빈센트 망가노, 토마스 갈리아노, 그리고 버팔로의 스테파노 마가디노, 클리블랜드의 프랭크 밀라노, 시카고의 폴 리카(Paul Ricca, 원래 이름은 펠리체 델루시아, 닉네임은 웨이터’), 캔자스 시티의 죤 라지아, 디트로이트의 가에타노 지아놀라(Gaetano Gianolla) 등이 이탈리아 출신이었고 루치아노의 측근인 마이어 랜스키, 벤자민 시겔을 비롯하여 뉴욕의 다른 그룹을 이끌고 있던 덧치 슐츠와 루이스 부챌터, 그리고 뉴저지의 론지 즈윌먼, 클리블랜드의 모리스 달릿츠, 미니애나폴리스의 이사도어 블루멘펠트, 보스톤의 하이만 아브람즈(Hyman Abrams) 등이 유태계로 이들이 신디케이트의 초기 멤버가 되었다. 그것은 참으로 전국적인 규모의 회합이었고, 그들 조직이 바로 오늘날과 같은 모양새를 갖추게 된 역사적인 회합이었다.

폴 리카

 

가에타노 지아놀라

 

덧치 슐츠

 

루이스 부챌터

하이만 아브람즈

이 신디케이트, 또는 전국 범죄 위원회(수사기관에 붙인 이름이다)는 미국의 연방 정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조직의 큰 정책을 결정하고, 연방 정부가 주 정부를 콘트롤하듯이 각 그룹 간에 발생하는 갈등을 조정하도록 하였다. 이들은 또한 분쟁을 방지하기 위하여 뉴욕을 제외하고는 각 지역에서 위원회가 인정한 하나의 조직만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기로 하였는데, 그렇다고 하여 이 정책이 유태계와 이탈리아계 중에서 택일을 했다는 뜻은 아니다.

예를 들면, 오하이오 주의 클리블랜드가 있다. 이곳은 역사가 오랜 도시로 암흑가의 조직 또한 매우 발달하여 여러 조직 간에 전쟁이 잦았는데, 프랭크 밀라노의 메이필드 로드 갱과 연합한 모리스 달릿츠가 신디케이트의 회원으로 가입한 후에는 이들 그룹이 클리블랜드에서 사업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고 나머지 조직은 자연히 도태되어갔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리스 달릿츠는 라스베가스로도 진출하게 되며 그 후에는 시카고 패밀리 쪽과 가까워지게 된다.

이때의 회합에서는 또 금주법 이후의 사업계획이 논의되었고, 대부분 카지노를 비롯한 도박사업이 유망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리하여 플로리다 주의 마이애미가 개방 구역으로 지정되어 도박을 비롯한 여러 사업을 벌이도록 권장되었는데, 이것은 어느 패밀리든 자유로이 그곳에서 사업을 할 수도 있고 투자를 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후일에는 서부의 라스베가스가 역시 개방 도시로 지정된다.

또한 동시에 쿠바에 대한 투자 논의가 있었다. 이때 쿠바에서는 이미 많은 미국의 대기업들이 진출해 있던 상태로 쿠바의 전 재산 중 약 70%가 미국인들의 것이었다. 온난한 아열대 기후와 훌륭한 경치로 당시 쿠바는 돈 많은 미국인과 남미 인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휴양지였는데 그들은 쿠바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카지노 사업을 벌일 구상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들은 신디케이트의 발언권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소규모 처형 집단의 존재를 승인하였다. 이와 같은 그룹이 존재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한 사람은 뉴욕의 유태계 갱 루이스 부챌터로, 그가 주장한 근거는 신디케이트의 멤버에 항거하거나 그 결정에 따르지 않는 이들이 생겨났을 때 그들을 처벌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집단이 어느 한 조직에 속하게 되면 그 조직의 힘이 너무 강력해져 세력의 균형이 깨지게 되므로 그것은 독립된 조직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같은 집단을 루이스 부챌터는 진작부터 운영을 하고 있었으며, 부챌터는 그의 명령을 듣는 히트맨들을 보다 조직화하여 신디케이트의 지휘 하에 두고자 한 것이었다. 주로 뉴욕 동부 브루클린 출신인 이들은 너무나도 거칠고 예측이 불가능한 자들로서 조직의 보스들조차도 그들과는 별로 만나고 싶어하지 않을 정도로 흉폭한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이것이 후일 그 유명한 살인주식회사(Murder Inc)’로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게 되는 조직이다. 살인주식회사라는 이름은 물론 이들이 스스로 붙인 것이 아니라 언론 쪽에서 마음대로 붙인 것이지만 그것이 과히 틀린 이름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이 조직은 그 타이틀 그대로 전문 킬러들의 집단이었던 것이다. 이 살인주식회사(통칭 줄여서 회사’)는 미국인들에게 알려진 것 중에서 가장 흉악한 자들의 집단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 회사의 뉴욕의 특별 검사 토마스 듀이(THomas E. Dewey, 1943년부터 1955년까지 뉴욕 주지사를 역임. 1944년과 1948년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와의 한판 승부는 나중에 살펴보기로 한다.

살인주식회사의 초기 멤버들

 

토마스 듀이

 

 

그리하여 찰스 루치아노는 이탈리아계, 유태계를 떠나 민족을 초월하여 미국의 지하 범죄세계를 통일한 인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루치아노는 이제 신디케이트 전체의 두뇌가 된 마이어 랜스키와 더불어 이 지하 사업을 더욱 확장하고, 더욱 견고하게 만들게 되며, 이렇게 시작된 신디케이트 제국의 사업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루치아노에서 비롯된 이들의 사업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지 않다면, 그리고 이들의 사업이 현재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아무리 루치아노가 미국의 범죄세계를 통일하였다 할지라도 그가 히틀러나 간디 등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나 헨리 포드, 빌 게이츠 등 오늘날 우리의 일상생활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가진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낸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졌던 인물 20>중의 한 명으로 뽑히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이들의 사업이 오늘날 얼마나 엄청난 규모가 되었는지는 죽기 전 언젠가 루치아노가 우리의 사업은 US 스틸(미국의 대표적인 거대 다국적 기업)보다도 덩치가 크다라고 기자들에게 말한 데에서도 잘 드러난다.

오늘날에는 마피아와 미국 신디케이트 조직 전체의 사업이 다른 나라의 조직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모두 합하여 대략 한해에 2,00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사법당국에 의하여 집계되고 있다.

이러한 재력을 바탕으로 한 신디케이트의 감추어진 진짜 영향력은 그 정도가 범 지구적인 스케일로서, 보통 사람들로서는 감히 그 침투력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것이 관련자들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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