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렵 찰스 루치아노와 가까운 동료가 되어 있던 루이스 부챌터의 주력 사업은 노동조합을 관리하는 사업이었다. 다른 조직들이 밀주와 그 관련 사업을 주업으로 하여 수익을 올리고 있을 때 부챌터는 노동조합의 경영을 통한 수익사업이라는 다른 분야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 사업도 부챌터가 최초로 개척하였던 것은 아니다. 루이스 부챌터 이전에 뉴욕에서 노동조합 관리 사업을 주로 하고 있었던 사람은 역시 같은 유태계인 제이콥 올겐(Jacob Orgen, 닉네임은 유태인 꼬마)이었다. 1920년대 중반까지 제이콥 올겐은 독보적인 노조경영 사업가였고 뉴욕에서 유명한 나이트클럽과 레스토랑도 몇 군데 함께 소유하고 있었다.
제이콥 올겐
노동조합을 통한 갱들이 하는 사업의 기본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막아주면서, 대신에 그 반대급부로 사용자들로부터 돈을 받아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까지 미국의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은 매우 열악하여 노동 운동의 역사 또한 매우 오래되었고, 따라서 노동 운동에 제3의 불순 세력들이 개입하게 된 것도 이미 오래 전부터의 일이었다.
남북전쟁 이후 미국은 빠른 속도로 공업화되기 시작하였는데, 때를 맞추어 밀려 들어오기 시작한 유럽으로부터의 대량 이민은 각 기업에 값싼 노동력을 공급할 수가 있었다. 저 유명한 타이타닉 호가 신천지에 대한 꿈을 안은 유럽 이민들을 싣고 영국의 사우스햄프턴 항구를 떠나 미국으로 향한 것도 바로 이 대이민의 시기인 1912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미국의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장시간의 노동으로 심한 시달림을 받고 있었으며, 그러한 환경을 개선시켜보고자 노동자들은 조직화된 단체 행동을 하기 시작하여 근대적 의미의 노동조합이 이미 1866년경부터 결성되기 시작하였다.
1918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되고 독일이 패퇴한 뒤로는 미국민들의 공동의 적은 러시아와 공산주의자들로 되어 있었고, 그 영향으로 이후의 노동 운동은 공산주의자의 사주에 의한 것으로 왜곡되기도 한다. 1919년에 시애틀에서 일어난 파업을 필두로 시작하여 점차 규모가 커져 결국에 가서는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이 가담하게 된 1919년 대파업이 바로 공산주의자들의 선동에 의하여 일어난 것으로 알려지게 된 노동 운동의 대표적인 예이다.
1919년의 시애틀 대파업
1926년 6월, 뉴욕의 여성의류 노조(International Ladies Garment Workers Union, ILGWU)의 간부들 중에서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을 몰아내려는 시도로부터 비롯된 사용자와 노동자간의 분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질되어 각각 사용자와 노동자로부터 고용된 갱단간의 싸움으로 확산된다. 이때 사용자측에서 고용한 것이 잭 다이아몬드 갱이었고, 노동자측에서 고용한 것이 제이콥 올겐 갱이었다. 이들의 갈등은 시간을 끌다가, 당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사업가이자 도박사 겸 갱인 아놀드 로드스타인이 중재하여 끝나게 되고, 고용되었던 갱인 잭 다이아몬드와 제이콥 올겐은 이 사건 이후 오히려 서로 가까워지게 된다.
파업에 나선 여성의류 노조 간부들
잭 다이아몬드
아놀드 로드스타인
루이스 부챌터는 1927년 10월 15일, 자신의 부하들과 함께 이 제이콥 올겐과 잭 다이아몬드의 연합을 공격하여 다이아몬드를 부상 입히고, 올겐을 제거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뉴욕의 노조사업을 인수하게 된 것이다. 제이콥 올겐의 장례식은 생전의 그의 실력을 반영하듯 매우 거창하게 거행되었고, 신문들도 헤드라인으로 그것을 언급할 정도였다고 한다.
올겐의 사업을 넘겨받은 부챌터는 그 후 올겐과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노조경영의 달인이 되는데, 향후 그가 영향을 미치게 되는 노조는 여성의류 노조, 재단사 노조 등 의류 관련 노조를 비롯하여 제빵업계 노조, 모피업계 노조, 연극 및 영화 관련자 노조(IATSE)와 그에 소속된 영화기사 노조 등 그 수를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가 된다.
노동조합을 관리하며 그로부터 이익을 만들어내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의 갱들의 사업 중 하나로, 금주법 이후의 시대에 이 노조관리 사업은 도박사업과 함께 이들의 주력사업으로 각광을 받게 된다. 일례로 볼 때, 1932년에 만들어진 시카고 범죄 대책 위원회(1919년에 조직됨)의 보고서에 의하면, 당시 시카고 지역의 노동조합의 약 2/3가 직, 간접적으로 갱들의 지배하에 있었다고 조사되고 있을 정도였다. 따라서 갱단간의 관할 구역이 정리되기 전에는 노동조합을 둘러싸고 일어난 갱단간의 다툼도 많았다. 1931년에 뉴욕에서 있었던, 노동조합의 관할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갱단간의 갈등을 한번 살펴보기로 한다.
1931년 초, 연합 의류노조의 회장이었던 시드니 힐먼(Sidney Hillman)은 산하 단체인 재단사 노조의 횡포를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재단사 노조는 루이스 부챌터에게 지배당하고 있는 노동조합 중 하나였는데, 부챌터는 재단사들이 파업을 일으킬 경우 의류를 만드는 공정이 처음 단계부터 중단될 수밖에 없는 점을 이용하여, 재단사 노조를 통해서 의류 산업의 다른 노조까지 모두 영향력을 미치고 있던 중이었다.
시드니 힐먼
연합 의류노조는 연일 재단사 노조의 부패한 간부들의 퇴진을 종용하는 데모를 벌이고 있었으며, 한번 데모와 행진이 시작되면 그것은 절대 평화롭게 끝나는 법이 없었다. 계속되는 투쟁 가운데에서도 딱히 얻어지는 것이 없자 연합 의류노조의 간부 중 한 사람인 브루노 벨레아(Bruno Belea)는 어려운 결심을 하게 된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분쟁을 자기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하여 당시 암흑가의 실력자 중 한 사람이었던 찰스 루치아노에게 도움을 요청하겠다는 것이었다.
연합 의류노조로부터 청탁을 받은 루치아노는 재단사 노조가 자신과 안면이 있던 루이스 부챌터의 것임을 알게 되자 자신은 그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답하였고, 루치아노로부터 실망스러운 대답을 얻은 브루노 벨레아는 이번에는 다시 다른 그룹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는데, 이번에 그가 선택한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얼마 전 마세리아를 제거하고 뉴욕의 보스 중의 보스로 올라선 살바토레 마란자노였다.
의류노조 문제로부터 루이스 부챌터를 축출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마란자노는 만면에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것은 다른 그룹으로부터 비난받지 않고 노동조합 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부챌터의 세력이 만만치 않은 것은 잘 알고 있었으나 일단 자신이 나선다면 부챌터로서도 몇 발자국 후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귀제뻬 마세리아를 제거한 후 뉴욕 암흑가에서 욱일승천하는 기세의 마란자노였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마란자노가 이번 분쟁에 개입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루이스 부챌터는 내심 초조하게 되었다. 벌써 사용자 중의 한 명으로 루이스 부챌터에게 매우 호의적이었던 귀도 페라리(Guido Ferrari)가 데모 도중에 입은 상처의 출혈로 사망하는 등, 당장 부챌터의 피해는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러나 부챌터는 현명하게도 이 난국을 전면전으로 가져가지 않고 술책을 부려 타개하려고 하였는데, 그가 생각해낸 해결책은 마란자노와 갈등 관계에 있던 찰스 루치아노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부챌터는 루치아노에게 ‘이번에 내가 당하면 다음 번 희생물은 루치아노 당신 차례이다. 마란자노는 당신이 나와 친분관계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가 나를 이렇게 핍박하는 것은 다름아닌 바로 당신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내가 당하면 다음 차례는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일 것이다’라고 설득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인 1931년 9월 10일, 알려진 대로 마란자노는 뉴욕 센트럴 빌딩의 그의 사무실에서 토마스 루케제가 인솔한 4명의 유태인 히트맨에게 피살당하게 된다.
부챌터가 이야기한 이 노조 문제가 루치아노로 하여금 마란자노를 제거하게 만든 유일한 원인이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루치아노로서는 마란자노를 없애야 할 이유를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의 일도 어떤 방향으로든 루치아노에게 작용을 한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마란자노가 죽고 나서 바로 얼마 후, 연합 의류노조의 문제는 부챌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결이 된다. 의류노조의 간부, 브루노 벨레아는 부챌터에게 100%의 협조를 약속하고, 땅에 엎드려 용서를 빔으로써 겨우 목숨만은 건질 수가 있었다.
그런데 대체 노동조합을 통한 사업이란 얼마만큼의 매력이 있는 것이기에 이렇게 갱들이 그것을 둘러싸고 극성을 피운 것일까? 노동조합을 통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길은 또 무엇이 있는 것일까? 갬비노 패밀리의 보스 폴 카스텔라노는 일찍이 피살되기 전 ‘우리의 일은 바로 노조를 경영하는 것(FBI의 도청 테이프에 녹음되어 있던 말이다)’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갱들의 노조경영 사업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루이스 부챌터가 관리하던 의류노조를 통하여 그 방법을 자세히 알아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