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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흥미돋]진짜 알수록 무슨 현실을 게임처럼 살다간 급의 인물

작성자그럼에도 봄은 온다|작성시간26.08.14|조회수2,418 목록 댓글 21

출처: https://www.fmkorea.com/10199201098

 

 

 


안중근, 윤봉길과 더불어 한국인에게 가장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인 이봉창 의사

 

 

흔히 원래 친일이었는데 나중에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일본 천황을 폭사시키려고 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근데 이 분의 행적을 더 자세히 살펴보면


무슨 지구 온라인에 접속한 유저 플레이가 의심될 정도인데

 

 

 

 

 

 

 

 

1

 

 



의외로 19세의 나이에 용산역 말단 노동자로 고용

 

이후 4년만에 역무원 -> 전철수 -> 배차 담당자까지

 

 

승진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승진 속도, 봉급 등의 차별행위를 대놓고 당함

 

 

그래서 뒤도 안돌아보고 철도국에서 퇴사

 

 

 

 

 

 

 

 

 

 

 

2

 

 



아무튼 도박빚이 4백원 정도 생길 정도로

 

쉬었음 청년 생활하던 도중

 

 

일본 가면 돈도 받고 차별도 없다는 소리를 들음

 

그 때 철도국에서 알던 일본인 지인이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한국인 식모를 찾자, 자기 조카를 식모로 보내는 대신

 

자기도 같이 끼워달라고 해서 일본 오사카로 감

 

 

 

 

 

 

 

 

 

3

 

 



일본에 도착한 직후 조선인 정체성을 버리고

 

진심으로 일본인처럼 살고 싶어함

 

 

그래서 일본어도 현지인 수준으로 배워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 이봉창이 조선인이라고는 1도 생각 못할 정도

 

 

심지어 직업소개소에서 조선인이라고 꺼지라는 통보를 받았음에도

 

이성적으로는 차별의 현실을 인정하며 더 일본인이 되려고 노력

 

 

 

 

 

 

 

 

 

 

 

4

 



암튼 숱한 차별대우를 받았지만 일은 에이스급으로 잘해서

 

여러 곳에서 일하며 꽤 돈을 모으긴 함

 

 

여기에 사람들이 조선인이라고 하면 대놓고 차별하거나

 

"이봉창"이라는 발음을 어려워하자

 

 

아예 이름을 기노시타 쇼조로 갈았을 정도

 

근데 이름만 보고 처음에는 돈도 많이 주고 대우해주다가

 

 

막상 호적등본보고 조선인인 거 알자마자

 

임금이 반토막나거나 해고 당하는 짓이 반복됨

 

 

 

 

 

 

 

 

 

 

 

 

5

 



그러던 도중 1928년 히로히토 덴노의 즉위식 소식을 듣고

 

순수하게 황국 신민으로서 천황의 얼굴을 보고자

 

 

친하게 지내던 조선인 2명과 함께 교토로 감

 

밤 기차로 교토에 도착하고, 무려 밤을 새우며 즉위식을 기다림

 

 

그리고 아침 6시 무렵에 일본 천황 행렬 참판석에

 

자리를 잡는데 성공함

 

 

 

 

 

 

 

 

 

 

 

 

6

 

 



근데 경찰의 참관자 몸수색 때 이봉창의 짐에서

 

한글 편지를 발견함

 

 

걍 조선에 있는 친구한테 보내는 편지인데

 

경찰은 바로 이봉창을 연행해서 조사도 없이 유치창에 처넣었는데

 

 

무려 9일 동안이나 물증 없이 걍 잡아두던거

 

이 때를 기점으로 그동안 자신이 믿은 내선일체의 허구를 깨달음

 

 

 

 

 

 

 

 

 

 

 

 

 

 



"역시 나는 조선인이다. 

 

조선인 주제에 일본 천황 같은 것을 볼 필요는 없다는 것 아니냐?"

 

-이봉창 수기-

 

 

 

 

 

 

 

 

 

 

 

 

 

7

 




이후 오사카의 가노스케 비누 도매상 직원으로 취업한 이봉창

조선인이 가장 많은 곳에서 그는 철저히 일본인으로 위장함

그러나 소매점에서조차 조선인 구매자들에게

욕을 하는 걸 보고 일본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음

그러던 중 소매점 주인이 이봉창이 조선인임을 알고 임금을 깍자

바로 수금한 돈 100원을 갖고 도쿄로 도망

 

 

 

 

 

 

 

 

 

 

 

 

8

 

 

 

도쿄에서도 유랑생활을 하다가

대금 60원을 위치이동 시킨 뒤 오사카로 다시 런한 이봉창

그러던 중 우연히 박태산이라는 조선인을 만나고

그에게 상해 임시정부가 조선인들에게 

영국계 전차 회사 취업을 알선해 준다는 소식을 들음

이에 일본에 학이 떼여버린 이봉창은

열차 경험도 있겠다 일본을 떠나 상해로 가기로 결정

 

 

 

 

 

 

9




일단 상해에 도착한 직후 임시정부와 접선한 이봉창

근데 골 때리는게 임시정부 사무소로 찾아간 이봉창은

사무원 김동호에게 "일본어"로 자신의 경력을 밝히고

백정선이라는 가명을 대며 취직을 알선해달라고 함

이에 임시정부 측은 여기선 영어와 중국어를 배워야 취업이 된다고 조언

이에 어학 공부 비용을 벌기 위해 일본 철공소에 알바를 뜀

 

 

 

 

 

10

 



근데 과거에 진짜 일본인처럼 살기 위해 노력?한 덕분에

상해 일본 거류 지역민 그 누구도 그를 조선인으로 생각조차 못함

그래서 일본 거류 지역민은 물론이고

일본 총영사관 경찰부장까지 지인으로 둬서

일본 영사의 방까지 들어가봤을 정도ㄷㄷ

참고로 훗날 일본으로 다시 떠날 때 추천서까지 써줬다

 

 

 

 

 

 

11



그렇게 영어, 중국어도 배우고

 

틈틈히 도박질도 하면서 살던 중

 

 

안중근 의사의 동생인 안공근과 친해짐

 

여기서 독립 운동에 대해 자세히 알게되었고

 

 

특히 그동안 겪었던 조선인 차별의 설움이 폭발하여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의 길로 들어서게 됨

 

 

 

 

 

 

 

12

 



아무튼 취업 알선 중간 보고 느낌으로

 

임시정부의 주석인 김구와 독대한 이봉창

 

 

근데 처음에 워낙 일본인스러운 제스처

 

일본어와 한국어를 섞어 쓰는 화법, 처음에 가명을 댄 점

 

 

그리고 임시정부 안에서 임시정부의 멸칭 "가정부"라는 말을 썼기에

 

많은 사람들이 대놓고 저SH끼 밀정이네 소리를 할 정도

 

 

그러나 김구 앞에서 이봉창은 뜬금없는 말을 하니

 

 

 

 

 

 

 

 

 

 

 

 

 



"조선인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조선의 독립운동에 몸을 던져 

 

우리 2천만 동포의 자주권을 위해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마음먹었습니다"

 

 

 

 

 

 

 

 

 

 

 

 

13

 




당연히 김구의 반응은 윗짤과 같았음

 

그러나 몇 번 대화를 해본 결과 그의 말이 진심임을 파악한 김구

 

 

이에 여러번 그를 자기 방으로 불러 이야기를 했는데

 

당연히 도박, 계집질 등으로 소문도 안좋고

 

 

"왜영감"이라고 불릴 정도로 일본인스러웠기에

 

직원들은 물론이고 이동녕과 조소앙마저 김구에게 질책을 할 정도

 

 

 

 

 

 

 

 

 

 

 

 

 

 

14

 



그러나 이봉창은 보법이 진짜 달랐는데

 

자기를 대놓고 의심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고기와 술을 직접 사와 대접을 하면서

 

그동안 세일즈 일하면서 얻은 신들린 혓바닥 능력으로

 

 

그들을 하나하나 감는데 성공

 

술자리가 무르익었을 무렵 그는 직원들에게 한마디를 던지는데

 

 

 

 

 

 

 

 

 




 

 

 

 

 

 

 

 

 

 

 

 

15

 


인생 자체가 정답 그자체였던 인물


당연히 직원들은 폭소 반 경악 반의 반응

 

근데 이 취중진담을 말한 이봉창은 며칠 뒤

 

 

김구를 찾아가서 진짜로 천황을 날려버리자고 주장

 

이에 김구는 자기가 설립한 한인애국단에 가입시킨 뒤

 

 

협력 조직인 국민 혁명군의 장교이자

 

훗날 국군의 전설이 되는 김홍일(장군)에게 폭탄 조달 및 교육을 부탁함

 

 

 

 

 

 

 

 

 

 

 

 

16

 



이후 미국 본토, 하와이, 멕시코, 쿠바의 한국 교민들과 안창호

보낸 성금과 김구의 사비를 털어서 총 250원을 마련

김홍일은 폭발력은 작지만 신뢰성이 높고 가벼운

마미 수류탄을 제공함

이 모든 게 준비될 때까지 이봉창은 

낮에는 마시거나, 카페, 영화를 보며 골프를 치고

밤에는 마작을 하거나 유곽도 많이 드나들음

당연히 임정 직원들은 저런 인간을 왜 김구가 받아줬는지 의문을 표함

 

 

 

 

 

 

17



1931년 12월 13일 김구는 사진관에서

 

이봉창에게 폭탄 2개와 독립선서문, 태극기를 전달함

 

 

이봉창은 선서문을 가슴에 단 다음 수류탄을 들고 사진을 찍음

 

이로써 이봉창의 한인애국단 가입 절차가 끝나고 임무 공식 투입이 결정

 

 

이후 12월 17일 떠나기 전 이봉창은

 

김구에게 한마디를 하며 허리 숙여 인사한 뒤 일본으로 떠남

 

 

 

 

 

 

 

 

 

 

 

 


실제 선서식 당시 이봉창 의사의 사진

 

 

"나는 평생에 이처럼 신임을 받아 본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처음이요, 또 마지막입니다. 

 

참으로 선생님이 하시는 일을 영웅의 도량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18

 



12월 20일 일본에 도착한 이봉창은

 

나라를 관광하며(..) 도쿄의 요요기 연병장의 

 

 

만주 침략 관병식 히로히토가 참석한다는 소식을 받음

 

근데 도쿄에서도 골프치면서 육신의 쾌락을 충분히 즐기면서 지냈는데

 

 

문제는 행사 전날에 일본 경찰이 도쿄 관내의 절, 여관, 절을

 

모두 뒤졌음에도 이봉창은 발견되지 않음

 

 

왜냐면 그 시각에 유유히 도쿄에서 빠져나가

 

가와사키의 유곽에서 그시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

 

 

 

 

 

 

 

 

 

 

사실 유곽에 있었던 이유는 이러한 검문을 피하기 위해서였음

 

아무튼 안걸리고 행사 당일 7시에 도쿄에 입성한 이봉창

 

 

일단 밥먼저 먹자는 마인드로 근처 식당에서 오야코동을 먹던 중

 

형사 2명이 들어오는 것을 발견함

 

 

여기서 이봉창은 태연하게 일본에서 일할 때

 

받았던 일본 육군 헌병대 조장의 명함을 주며

 

 

"이 사람의 초대를 받았는데 어디로 가면 됨?"

 

이라 말하며 형사들과도 태연하게 웃으며 정보를 빼냄

 

 

 

 

 

※ 그 와중에도 멋들어지게 올백으로 빗질 한 뒤

 

헌팅캡과 신사복을 입고감

 

 

 

 

 

 

 

 

 

 

 

 

 

20

 



이후 신문팔이 소년, 구두닦이 등에게

 

히로히토의 이동동선을 입수한 이봉창

 

 

근데 중간에 스케줄이 바뀌거나 이미 그곳을 지나가서

 

일단 히로히토가 환궁할 때 조지기로 결정함

 

 

근데 시간이 남아서 거사 할 때까지 또 술을 마심

 

이후 관병식이 끝나다는 소식을 듣고 가게 밖을 나갔는데.....

 

 

 

 

 

 

 

 

 

 

 

 



히로히토의 행렬 끝이 그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21

 



근데 문제는 히로히토는 이미 길 모퉁이를 돌아가버린 상황

 

이에 주변 사람들에게 천황 행차 행렬을 어떻게 보냐고 물어본 뒤

 

 

알려준 곳으로 가기 위해 바로 택시를 탄 다음

 

천황 폐하를 봐야하니 최대한 빠르게 갑시다!! 라고 함

 

 

당연히 택시기사는 신나서 분노의 질주를 시작

 

 

 

 

 

 

 

 

 

 

 

 

 

 

22

 



근데 당연히 어가 행차이기에 경찰이 길을 막음

 

그래서 이봉창은 경시청을 가로질러 행렬로 가려 함

 

 

근데 그곳을 지키는 경찰관을 맞닥드리는데

 

여기서도 아까 보여준 명함을 들이밀며 통과를 요구

 

 

처음에는 경찰관도 거부를 했지만

 

미친 열연을 펼치는 이봉창의 요청에 결국 길을 열어줌

 

 

 

 

 

 

 

 

 

 

 

 

 

23

 



이렇게 경시청 현관 앞 잔디밭에 도착한 이봉창

 

이미 이곳은 히로히토를 보기 위해 7~8겹의 군중이 밀집한 상황

 

 

근데 문제는 행렬의 마차는 2대 였고

 

어디에 히로히토가 탄 지 모르는 상황

 

 

이 때 이봉창은 의장병이 있는 두번째 마차를 타겟으로 삼아

 

18m의 거리를 가로질러 힘껏 수류탄을 던짐

 

 

 

 

 

 

 

 

 

 

 

 

 

 

 

24

 



수류탄은 유유히 날라가 마차의 마부 받침대에 떨어졌고

 

그대로 폭발

 

 

근데 히로히토는 하필 첫번째 마차에 타고 있었고

 

이봉창은 거사 실패를 직감함

 

 

근데 그 순간 순사들이 이봉창 뒤에 있는 어떤 사람

 

범인인 줄 알고 체포하며 구타하는 걸 목격한다

 

 

그리고 이봉창은 선택을 내린다

 

 

 

 

 

 

 

 

 

 

 

 


체포된 이봉창 의사

 

 

"그 사람은 아니야! 나다!"

(あの人じゃない!私だ!)

 

 

 

 

 

 

 

 

 

 

 

 

 

 

25

 



이후 체포된 이봉창은 취조를 기술하던 서기관이

 

"이와 같은 중대한 범행을 감히 저지른 데 대해 자책의 관념이 추호도 없는 듯했다"

 

 

라고 증언했을 정도로 매우 당당한 자세로 심문에 응한다

 

이와중에 사건 배후를 김구가 아닌 자기가 가명으로 댄 백정선으로

 

 

말하며 당시 일본 경찰의 최우선 목표인

 

김구 체포를 막기 위해 시간까지 벌 정도

 

 

 

 

※ 이후 백정선이 김구라는 사실을 알아낸 일본 경찰은

 

상해 프랑스 조계지에서 대대적인 김구 체포 작전을 벌이지만 실패한다

 

 

 

 

 

 

 

 

 

 

 

 

 

26

 



사건 이후 임시정부의 여당인 한국독립당에서는

 

"쌤통이다 q신들아ㅋㅋ"로 요약되는 기고문을 발표했

 

 

이봉창의 행실을 못마땅해하던 이시영과 조소앙마저

 

이봉창의 의거 소식을 듣고 사람을 잘못봤다고 한탄할 정도로

 

 

이봉창은 김구를 제외한 모두를 속이는데 성공한 셈

 

물론 중국 언론 역시 대단한 호걸이라고 칭송 기사가 연일 나왔다

 

 

 

 

 

 

 

 

 

 

27

 


재판장으로 들어서는 이봉창 의사(얼굴에 용수가 씌워진 인물)

 


1932년 9월 30일 오전 9시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이봉창 의사의 사형이 집행된다

 

그의 나이 향년 32세였다

 

 

 

 

 

 

 

 

 

 

 

 

 

 

28

 



조선의 친일파들은 jon나 빠르게 반응했는데

 

친일파의 거두인 박춘금은 궁내성을 방문해

 

 

범인이 조선인임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도게자를 꿇었고

 

친일단체 120명을 소집해 궁성 입구에서 직접 사죄를 청한다

 

 

의거 직후 일본 고위 관료들은 지네 오야가 뒤질뻔한 걸 방관한 죄로

 

대거 사퇴, 해임당했고, 심지어 이누카이 총리도 사퇴를 청했을 정도

 

 

 

 

 

 

 

 

 

 

 

 

 

 

29

 



그러나 도쿄 궁성 앞에 내려 앉은 불씨는

 

꺼지지 않고 온 산을 태우게 되니

 

 

이봉창의 대형 의거를 목도한 수많은 조선의 젊은이들이

 

독립운동을 위해 상해로 건너가기 시작했고

 

 

그들 중에는 농촌계몽운동을 하던 윤봉길도 있었다

 

실제로 윤봉길은 김구에게 "이봉창 의사와 같은 일로 써 달라"라고 부탁했을 정도

 

 

 

 

 

 

 

 

 

 

 

 

 

30


왼쪽부터 백정기 의사 - 윤봉길 의사 - 이봉창 의사 - 안중근 의사(가묘)

 

1945년 조국이 광복을 맞는다

 

그리고 1년 뒤인 1946년

 

 

김구는 일본 정부에게 이봉창 의사의 유해를 돌려받는다

 

부산역으로 들어온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삼의사의 영결식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참석했고

 

용산구 출신인 이봉창은 고향인 용산구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안장된다

 

 

 

 

 

 

 

 

 

 

 

 

 

 

31

 



그리고 순국으로부터 30년이 지난 1962년

 

이봉창은 건국에 공로가 있는 사람 만이 받을 수 있는

 

 

사실상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예로운 훈장인

 

건국훈장을 수여받는다



 

 

 

 

 

 

 

 

 

 

 

 



참고로 삼의사 중 백정기 의사에 대한 행적은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분은 말 그대로 아나키스트 계열 독립운동가 GOAT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과 24세의 나이에 경성, 인천 등지의 일본군 군사 시설 파괴 공작을 했고, 실패하자 바로 중국으로 망명

이후 국내와 국외를 왔다갔다하며 숱한 파괴공작을 기획했고, 심지어 다이쇼 덴노(히로히토 애비) 암살까지 계획할 정도ㄷㄷ

또한 중국에서도 지방군벌들에 대항해 농민자치운동을 전개하여 3500명의 농민자위군을 모았고

이후 이봉창의 의거에 감명을 받아 윤봉길과 동일한 날짜에 훙커우 공원에서 의거를 하려다 입장권을 못구해 실패합니다

이듬해에는 일본공사 + 일본 정치인, 중국 내 친일파, 일본 육군 장성 등 100명이 모인 곳을 폭파시키려다가

밀정의 밀고로 체포되어 결국 나가사키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형을 받다가 1년만에 폐결핵으로 사망합니다

 

 

 

-끝-

 

 

댓펌)


삶이 다이나믹하셨네. 옛날에 어디서 본건지는 모르겠는데 천황이 암살당했으면 조선인들 많이 죽었을 거라고 자기들 신을 죽인거니까? 암튼 그런 글을 봤는데 이건 어떻게 생각함?

 

 이러면 진짜 조선인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100프로 있었을게 자명하긴 함

근데 문제는 당시 사이토 총독의 문화통치와 20년이 넘어간 식민 통치로 인해

어린 세대들이 점점 일본화되가고 있었는데, 만약 이 때 대대적으로 조선을 탄압했다면

조선 독립 열기가 한반도 내에서 엄청나게 고조되었을 가능성도 높다고 생각함

만약 3.1운동 급으로 사람 쳐죽여댔으면 바로 전국에서 의병봉기 시즌 2 찍는 거지 뭐ㅋㅋㅋ

 

이미 식민지인과 내지인의 격차 때문에 민심이 곱지 않은 상황에서 본국 절반은 되는 인구랑 내전 치르고 싶으면 학살하시든지ㅋㅋ
조선인이 많이 죽을수도 있다는 이유를 앞세워서 천황 암살기도 자체를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깔린 질문처럼 보임

 

최소한 일본 거류 중인 조선인은 좋은 꼴 보지는 못했겠지만

반도에서도 그 짓하면 일본 정부가 경악했다는 3.1운동 x 10 급으로 저항운동 터졌을 거라ㅋㅋㅋㅋ


다른 사람이 의심받을 때 그 사람이 아니다 나다 하는게 진짜 말 안되네

 

일본 경찰들이 벙쩌있을 때 한 발언

"숨지 않을 테니, 점잖게 다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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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워라벨루가 | 작성시간 37분 전 new 감사합니다 ㅠㅠ 잊지않겠습니다 ㅠㅠ
  • 작성자이이잉런 | 작성시간 34분 전 new 눈물남 ㅠ
  • 작성자김설아 | 작성시간 28분 전 new 와 좋은 글 심지어 마지막에.. 나 효창공원 저기 일 땜에 여러번 갔는데도 이봉창의사 묘 있는 지도 몰랐네 부끄럽다ㅜㅜ
  • 작성자건강한 | 작성시간 18분 전 new 눈물남
  • 작성자그냥내맘이그래 | 작성시간 11분 전 new 독립운동가들이 완전한 사람들이 아니고 정말 일반시민이었다는게 많이 느껴지네. 자기먹고살려고 일본인으로 살려다가 너무 불공평한 조선인의 실태를 보고 겪으면서 이건 아니구나 한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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