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저의 반야심경 해설 작업의 일부를 찢어 옮깁니다. 이 원고는 아마 앞에서 이미 본 것일 겁니다. 하지만 어려운 내용인데다 조금씩 수정이 되고 있으니, 복습삼아 다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空(공)의 의미, 空은 무상, 무아를 의미함
한국불교에서 空(공)만큼 개념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애매모호하게 넘어가는 것도 없다. 공(空)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공(空)’을 어렵고 추상적인 어떤 개념으로 인식하여, ‘설명하기 곤란한 것’,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으로 풀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공(空)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공은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초기 경전인 아함경에는 공(空)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공(空) 대신 무상, 고, 무아를 썼기 때문이다. 잡아함경에서 공(空)이 사용될 때 ‘공’만 단독으로 쓰인 경우는 3~5번 정도밖에 되지 않고, 주로 ‘무상, 고, 공, 무아’의 형태로 쓰였다.
그 한 예로 다음과 같은 <잡아함경 제 265경, 포말경泡沫經, 이것 아닌 다른 경에서 그 예 찰을 것, 왜냐면 포말경은 뒤에 길게 나오기 때문>경을 보면 알 수 있다. //// 이와 같이 공은 무상, 고, 무아와 함께 쓰였다. 공이 무상, 고, 무아와 함께 쓰인 경우는 대승경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승경전인 <대반야바라밀다경>을 보면 다음과 같은 표현이 나온다. “또한 선현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의 매우 깊은 이치를 행하려고 하면, 마땅히 ‘무상[無常]’의 이치, ‘괴로움[苦]’의 이치, ‘공(空)’의 이치, ‘나 없음[無我]’의 이치를 행할 것이니라.”
이런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경전들을 보면 공은 ‘무상, 고, 무아’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반야심경의 ‘空(공)’ 자리에 무상, 고, 무아를 집어넣으면 딱 맞아 떨어진다.
<증일아함경> 제7권 17 안반품에는 다음과 같이 색즉시공(色卽是空) 대신 ‘色爲無常(색위무상)’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때 세존께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라운을 보며 말씀하셨다. "라운아, 너는 지금 색(色)은 무상한 것이라고 관찰해야한다." 라운이 응답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색은 무상한 것이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라운아, 수(受), 상(想), 행(行), 식(識)도 무상한 것들이다." 라운이 응답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수, 상, 행, 식도 무상한 것들이옵니다."
이와 같이 초기경전에는 공(空) 대신 무상(無常)을 쓰고 있다. 또 유정 번역의 반야심경에는 ‘空(공)’ 대신 ‘無性假性實性(무성가성실성)’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것은 다른 반야심경에서 찾아볼 수 없는 표현으로서, ‘자성(自性), 즉 고정불변의 실체는 없고[無性], 인연화합에 의해 잠깐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일 뿐[假性]이며, 잠깐 일어났다 사라진다고 해서 아주 없는 것은 아니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實性]’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유정이 반야심경을 번역하면서 공(空)의 의미를 풀어서 번역한 것이다.
공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유정의 ‘無性假性實性(무성가성실성)’이라는 표현을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해보자. 공(空)은 연기(緣起)를 의미한다. 초기 대승불교의 교학을 집대성하여 제2의 석가로 일컬어지는 용수는 그의 저서 <중론(中論)>에서 “수많은 인연이 모여, 존재를 생성시키는 것을 나는 ‘공(空)’이라고 말한다. 많은 인연이 갖춰지고, 그것들이 화합해서 존재가 생겨나는데, 이 존재는 많은 인연이 모인 것일 뿐,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는 것이다.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공(空)이다”고 했다. 즉, 공은 무자성(無自性)과 같은 뜻이고, 무자성은 많은 인연들이 잠깐 어우러져[和合] 존재하는 것일 뿐, 그 실체가 없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공(空)은 연기와 같은 뜻으로 쓰인 단어다.
이와 같은 의미로 부처님께서도 <중아함경 24권 97 대인경(大因經)>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이 연기는 대단히 깊기 때문에 정말 알기 어렵도다. 아난다여, 이 연기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통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저 중생들은 베틀의 실타래가 서로 얽이 듯이 바쁘고 부산하게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고,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오며, 왔다 갔다 하며, 생사(生死)를 뛰어넘지 못하는 것이다.”
연기(緣起)는 무아(無我), 즉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연기는 물질현상과 정신현상이 있을 뿐,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말한다. 이것을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지수화풍(地水火風)의 가화합(假和合)이 있을 뿐, ‘몸’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며,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이라는 찰나적 정신작용이 있을 뿐, 고정불변의 마음자리나 주인공, 진여 따윈 존재하지 않음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공(空)에 대해 조금 더 학술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空(공)은 산스크리트어 Śūnya(쓔냐)의 번역어다. Śūnya(쓔냐)는 부풀어 올라 안이 텅 빔, 제로(zero), 없음, 존재하지 않음, 절대적 공(空) 등의 뜻으로 ‘無(무)’, ‘空無(공무)’, ‘空虛(공허)’, ‘空寂(공적)’, ‘空閑(공한)’, ‘空性(공성)’ 등으로 한역돼 있다. 모든 존재는 인연화합에 의해 생겨난 것으로서, 홀로 독립적으로 변하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영원불멸의 ‘실체(實體)’, ‘본체(本體)’, ‘아체(我體)’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므로 ‘空(공)’이라고 한다.
공은 불교 이전부터 인도에서 널리 사용돼오던 단어로서, 인도 수학에서는 영(零,zero)을 의미하고, 힌두교에서는 브라만(梵)과 열반(涅槃)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이것이 연기(緣起)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즉, 모든 존재는 인연(因緣)화합에 의해 찰나순간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존재이므로 고정불변의 실체, 즉 자성(自性)이나 아트만 따윈 없고, 아트만[我]이나 자성이 없으므로 무아(無我)이고, 무아이기 때문에 ‘空(공)’이라고 한다. 즉, 붓다의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의 개념을 대승불교에서 조금 다르게 표현해서 ‘공(空)’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