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의 추억
모내기 1
김이 모락 모락나는 입쌀밥을 양푼에 곱게 담으시고,
자작 자작 윤기나는 두부조림을 옆에 놓으십니다.
엊저녁 밤늦게까지 다듬던 도라지도 남포 불빛에 물이 들었는지 빨간색으로 변했습니다.
광주리 안엔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음식들로 가득 채워집니다.
겨우내 아껴두었던 양미리도 꼬마녀석 상민이의 눈과 코를 자극합니다.
" 엄마! 나 양미리 하나 먹으면 안돼? "
" 먹고싶니? 그럼 주전자 들고 엄마따라 논에 가자꾸나."
" 응~ 알았쩌! 그런데 주전자는 뭐야? "
" 막걸리란다. 쬐깐이 아빠가 아주 아주 좋아한다는..."
" 쬐깐이가 누군데? "
" 으...소양강에서 용이 났다고 백일간 잔치를 벌였다는 분의 막내아들이란다."
엄마께서 머리 위에 똬리를 얹고,
그 위에 음식을 하나가득 담은 광주리를 이고 논으로 향합니다.
일꾼들이 '너도 먹어라'며 던져주는 생선조각들의 기억이 생생한지 바둑이도 신이 났습니다.
엄마가 앞에 서고 바둑이가 서열 2위가 됩니다.
바둑이가 서열 2위가 되는 것은 순전히 양미리 냄새 때문입니다.
상민이는 주전자가 무거운지 허리를 굽히고 양 손으로 교대를 합니다.
" 엄마! 천천히 가~ "
바둑이의 꼬리가 막춤을 추고, 꽃다지가 살랑살랑~
엄마의 치맛자락이 폴락 폴락, 광주리가 빛나라 은수의 보글보글~
" 어이~~ 참이 왔어요~ 먹고 하자구요~~"
쬐깐이 아빠의 참 먹자는 외침에 들녘이 다 놀랍니다.
힐링이 따로 없습니다.
" 에게게...마끌리가 왜 요것밖에 없나요? "
" 상민이가 들고오면서 다 흘린게지요...아님 먹으면서 왔던가..."
"ㅎㅎㅎㅎㅎㅎ"
일꾼들과 엄마의 시선이 전부 상민이에게로 향합니다.
바둑이도 물끄러미 쳐다보며 비웃습니다.
그러나 웃음과 미소의 시선은 그다지 싫지가 않습니다.
괜히 바둑이 꼬리를 잡아당기며 쑥스러움을 대신합니다.
한 손으로는 거머리에 물렸던 자리를 긁적이면서...
모내기 2
종아리에 선혈이 낭자했다.
허벅지까지 스믈거리는 것으로 봐선 분명코 거머리가 살을 파고 들었음이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 엄마 나 어떡해~ "
" 어떡하긴...금방 아물테니 걱정마라 상민아..."
" 거머리가 몸 속으로 파고 들어갔나봐 엄마. 여기도 이상하고 또 여기도 이상하고 스믈 스믈..."
거머리에 물리면 바로 떼어버려야지 안그러면 거머리가 핏줄 속으로 파고들어 전신을 돌아다닌다고 들었다.
상민이는 반바지와 빤쓰를 무릎에 걸친 채 엄마께 두려움을 호소했다.
청량고추인지 번데기인지가 상민이의 두려움엔 아랑곳 않고 딴청을 부린다.
" 에이구 고녀석. 주인은 벌벌 떨고있구만 요놈은 걱정도 없나보네..."
" 엄마~~!! 나 무서워 죽겠단 말이야! 앙~~~"
" 걱정마라 녀석아. 거머리가 몸에 들어가면 요놈이 먼저 떨어질 거다. 요놈이 붙어있으면
거머리는 몸에 안들어간 것이야. ㅎㅎㅎ 우리 상민이 뚝! "
그 때 그 시절엔 6월과 함께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현충일 전엔 모내기를 끝내야한다며 자식들 친구도 동원하고 군부대의 병력도 지원받았다.
심술덕지의 김영감은 뜬모가 많이 난다며 굳이 일꾼들을 샀지만 대부분은 일 손을 아쉬워했다.
빗자루를 잡는 것이 유일하게 소일거리였던 노인들도 모내기철이면 흥겹게 논으로 향했다.
못줄이라도 잡으며 손이 느린 지원군을 채근했고,
허리에 무리가 안가도록 흥을 돋우며 줄을 넘겼다.
살판이 난 것은 농부들 뿐이 아니었다.
흑탕물 속엔 거머리들이 우굴거렸다.
일 년에 한 번 뿐인 잔칫상이었다.
농부들 종아리마다 거머리가 빨대를 꽂았다.
못줄을 늦게 넘길 때면 제자리에 서있지도 못하고 첨병거려야했다.
잠시라도 주춤하면 서너마리가 종아리에 붙었다.
몇 해가 지나자 젊은 여인들의 스타킹이 등장했다.
어느덧 스타킹은 모내기 때마다 필수품이 되었다.
스타킹은 각자 준비하기도했지만
여분으로 주인이 1년 동안 모아둔 여러 켤레의 스타킹을 모내기 할 때 사용했다.
" 이 스타킹 누가 신던 거야! 혹시 점례 것 아니야? ㅎㅎ 기분이 좋구먼...감촉도 좋고..."
" 이사람은 넉살이 천평이라니깐! 점례가 니한테 눈길이나 줄 것 같은가? 꿈 깨게..."
참 감촉이 좋았다. 남자들이 언제 스타킹을 신어보겠나.
( 이앙기가 철벅거리며 모내기를 쉽게 끝내는 것을 보면
그 옛날 동네 일손이 다 모여 흥겹게 들판을 수놓던 생각이 절로 납니다.
수필이랍시고 자작글 방에 올렸던 것을 옮겨왔습니다.^^ 봐주시는 거죠?ㅎㅎ)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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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수줍은하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0.07.13 그 시절 우리들 어머님께서는
가장 먼저 일어나 아궁이에 불을 지피편 하루가 시작이요
머릿수건 동여매고 밭을 나가시니 해가 중천이고
저고리 들추고 우리에게 젖을 물리니 뙤약볕에서 하루가 다 갔지요.
어찌 우리들이 살아오며 투정이나마 부릴 수 있겠는지요.
비가 내리는 이 아침에 저도 부모님을 다시금 떠올려봅니다.
좋은 날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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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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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수줍은하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0.07.13 무섭고 징그러운 동물이지요. 아으~~ ㅎㅎ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시길요~~^^ -
작성자서울미니 작성시간 20.07.11 전^^시골에 대해서는 깜깜 하지만
어떻게해서 밥상에 오르는지는 알지요
감사함 ^^ 무조건 감사함 을 드려요
배추 한포기 쌀 한톨도 -
답댓글 작성자수줍은하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0.07.13 맞아요^^ 맞습니다.
생산성 낮은 농부들의 노고에 감사드려야겠지요.
전 젊은이들에게 텃밭이나 주말농장을 권장하지요.
농사를 경험해야 양식에 대한 고마움이 생긴다고요.
남자들에게 한가지 더 권하는 것이 있어요.
적어도 요리 두가지는 할 줄 알아야된다고요.
부인과 어머님에 대한 고마움이 사랑으로 이어지거든요.^^
좋은 시간 이어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