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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댐

작성자수줍은하늘|작성시간20.07.13|조회수250 목록 댓글 14




1969년 여름...


" 초록빛 여울 물에~ 두 발을 담그~면~♬ "

" 두 발이야? 두 손이야? "

" 발이면 어떻고 손이면 어때? 흥~ 지는 노래도 못하면서... 초록빛 여울 물에 두 손을 담그~면~♪ "

" 여울 물이야? 바닷 물이야? "

" 이 게 강물이지 바닷물이야? 흥~ "

 

소양강 강변은 작은 꿈터였다.

노을이 물결을 타고 가슴을 비추면 한없이 들떴다.

숙이의 볼도 분홍빛으로 달아올랐다.

우리는 해가 기울 때면 언제나 그 언덕에 앉아 동요를 부르곤 했다.

여울 물에 발을 담그러 언덕을 내려갈 때면 숙이의 손을 잡아주곤 했다.

음치라 흉이 될 것 같아 노래를 따라부를 수는 없었지만,

손을 잡고 강가로 갈 때면 콧노래로 쬐끔 따라부르는 촌뜨기였다.

 

" 소양강을 막아서 댐을 만든다지? "

" 응. 도지골 옆에 집을 짓던데!? 기술자들 집이래! 일본 기술자들..."

" 언제부터 댐을 짓는대? "

" 상수네 사랑방에 월셋방 달라고 왔대나봐! 곧 시작한대..."

" 양색시가 나가고 가끔 우리들이 놀던 그 방? "

" 응..."

" 그럼 여름 내내 동산에나 올라가야지 뭐..."

" 동산도 없어진대!..."

" 왜? "

" 강을 막을려면 흙이 모자란대! 그래서 동산 흙을 다 퍼간대!...

우리도 동산 옆에 있는 땅 보상이 나왔다든데?!

아버지는 요즘 돈이 생겼다고 입이 이만큼 벌어졌어!.."

 

손가락으로 입을 찢어보이며 숙이를 동그랗게 쳐다보는데 발가락이 간지럽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돌맹이를 움직이니 수세미미꾸라지가 놀랬나보다.

발가락을 치며 다른 돌 틈으로 도망을 간다.

 

" 댐을 막으면 강물이 차갑다던데..."

" 그럼 강물에 못들어가는 거야? "

" 그렇대! 고기도 못살고 목욕도 못하고..."

" 에이~~ 그럼 강에 오나 마나네? "

" 그렇겠지..."

 

우리는 한 가닥의 노을빛이 머리에 반사되어서야 발을 빼고 신발을 신었다.

강물에 발을 담글 수 조차 없을 거라는 이야기에 숙이는 좀처럼 일어나려 하지 않았지만,

엄마의 가정법 1호인 '저녁 먹자~' 소리가 귀가에 맴돌았기에 숙이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밥 먹자는 말을 거스르면 국물도 없던 시절이었다.  

 

요란했다.

시끄러웠다. 

항공대의 비행기 소리와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는 자장가에 지나지 않았다.

마적산을 가로질러 죄수 복장의 건설단원들이 길을 내기 시작했다. 

양구와 연결되었던 도로가 댐에 잠기면 우회도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패랭이와 방가지 풀들이 먼지를 뒤집어 썼고,

꿩은 말할 것도 없이 고라니가 다급하게 도망치는 모습이 여러곳에서 보였다.

마적산이 잘리는 모습은 너무나 황량했다. 

 

이어서 덤프트럭과 포크레인의 세상이 왔다.

전국의 중장비가 샘밭에 집결된 것으로 보였다. 동산이 파헤쳐졌다.

땔나무를 짊어지고 내려오다가 마지막 쉼터로 자리매김했던 남향의 재덕이네 산소도

이장을 하자마자 파헤쳐졌다.

동산은 일 년도 되지 않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을의 병풍이 되었던 마적산은 먼 발치의 그림이 되었고,

베개삼아 아늑하게 즐기던 동산은 움푹 패여 목을 가눌 수가 없도록 만들었다.

그 뿐이랴. 우리의 젖줄이던 소양강은 바라보며 그리워해야만 하는,

그 또한 그림일 뿐이었다.


우리들의 젖줄인 소양강이 막히고,

우리가 정기를 받던 마적산이 잘리고,

아늑했던 동산이 도려내지고...


드디어 샘밭의 운명이 기로에 놓이게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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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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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수줍은하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7.14 인간의 욕망 중에 금력의 비중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한 때는 명예를 중시했으나,
    금력에 권력과 명예와 자존심이 포함된다고 현대인들은 믿는 것 같아요.
    돈이 곧 힘이라는 공식이 무너지길 바라지만
    우리 세대에선 지구가 둥굴다는 진리를 알지 못할 것 같네요.
    아직은 이 시대적 개발에 익숙해지고 적응이 된 상태라 그렇겠지요?^^

    화사하게 웃음꽃 피는 화요일 되시고요~^^
  • 작성자지존 | 작성시간 20.07.14 소양강 개발의변천사를 보네요
  • 답댓글 작성자수줍은하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7.15 우리는 모든 것들을 경험하며 바꿔놓은 세대이자 낭만적인 세대지요.
    40대 까지는 이야기를 해주어도 이해를 못해요.
    당연히 급변기의 인간사에 세대간 벽이 쌓이는 것을 느낍니다.
    전쟁 전후의 고생스러운 세대와 낭만의 세대, 금력의 세대가 공존하기란 이렇듯 어려운 가 봅니다.
    역사의 순리라 생각해야겠지요.

    힘찬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작성자서울미니 | 작성시간 20.07.14 어렴풋이 잊혀질뻘한 이야기네요
    잘 익엇습니다 감사해요
  • 답댓글 작성자수줍은하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7.15 어렸을 때의 여름 풍경은 소박하면서도 낭만에 가까웠지요.
    우리는 주로 강에 나가 살다시피 했습니다.
    댐으로 인하여 강물에 손조차도 담글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워요.
    수온이 여름에도 10도를 넘지 못하니까요.
    다녀가신 흔적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오늘도 행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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