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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랑

오늘의 날씨 / 이장욱

작성자플로우|작성시간19.06.24|조회수228 목록 댓글 0

 

제네바에서 모스크바까지

모스크바에서 또 서울까지

우리들은 잠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지워진 몸으로 연결되었다. 이제야

수많은 손가락들은 아무것도 가리키지 않는다.

잠 속의 나는 당신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다.

 

모든 사랑은 건전한 일상 속으로 사라져요.

어째서 우리는 견딜 수 있는 거지?

하지만 오늘은 저녁 약속이 있어요.

종로 3가 횡단보도 옆에 주저앉아,

석양을 받으며,

끄덕끄덕 졸고 있는 남자.

 

엘리베이터처럼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우리는 동시에 떠올렸다.

우리의 내부에서 무엇인가 하강해.

우리는 지친 잠 속에서 만나겠지만

오늘의 날씨는 서울에서 제네바까지

제네바에서 또 모스크바까지

변동이 없었다.

 

오전에서 내일의 다른 오전까지는

날 잊어줘.

우리는 물구나무를 서서 장엄한 아침을 맞자.

물구나무는 외로워.

당신이 거꾸로 보이고

나는 오늘의 날씨 속으로

영원히 하강 중이지만

 

 

[정오의 희망곡], 문학과지성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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