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에서 모스크바까지
모스크바에서 또 서울까지
우리들은 잠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지워진 몸으로 연결되었다. 이제야
수많은 손가락들은 아무것도 가리키지 않는다.
잠 속의 나는 당신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다.
모든 사랑은 건전한 일상 속으로 사라져요.
어째서 우리는 견딜 수 있는 거지?
하지만 오늘은 저녁 약속이 있어요.
종로 3가 횡단보도 옆에 주저앉아,
석양을 받으며,
끄덕끄덕 졸고 있는 남자.
엘리베이터처럼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우리는 동시에 떠올렸다.
우리의 내부에서 무엇인가 하강해.
우리는 지친 잠 속에서 만나겠지만
오늘의 날씨는 서울에서 제네바까지
제네바에서 또 모스크바까지
변동이 없었다.
오전에서 내일의 다른 오전까지는
날 잊어줘.
우리는 물구나무를 서서 장엄한 아침을 맞자.
물구나무는 외로워.
당신이 거꾸로 보이고
나는 오늘의 날씨 속으로
영원히 하강 중이지만
[정오의 희망곡], 문학과지성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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