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섭이 그대 지금 어디 있는가
곡기 다 끊고 밤에 술 마시고 낮에 물 마시고
헌헌장부 그 큰 키로 성큼성큼 걷는 모습 눈에 선한데
누구도 그대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하네
사위는 백년지객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대 일본 가서 찬밥 취급에 문전박대 당한 게 아닌가
아내 남덕이와 두 아들 태현이 태성이 눈에 밟혀서
은박지에다 그리고 또 그리고
울다가 엽서에도 그리고
꿈에라도 만나면 그날은 행복했다지
중섭이 도대체 어디로 숨은 겐가
그대가 표지 그림 그리고
내가 원고를 모았지, 응향凝香………
그때 우리 참 젊었지 자넨 소를 따라다녔고
난 이남으로 탈출하였지
자네 노래 다시 한 번 듣고 싶으이*
테너 목소리, 술집 처마 쩌렁쩌렁 울리던 그 목소리
내 시집에 자네 그림 「달과 까마귀」 얹고
내 건네는 술잔에 자네 눈물 섞어 마시다
하룻밤 사이에 빈털터리 되면
자넨 빚 못 갚는 그림 다시 그리고
난 돈 안되는 시 새로 쓰지 뭐
뭐라도 먹어야 그림 그리지 않나
세발자전거 사준다는 약속 못 지킨 게 한이라고
곡기 다 끊고 밤에 술 마시고 낮에 물 마시고
어디로 사라진 겐가 소 눈망울을 한 사람아
* 이중섭은 살아생전에 독일 민요「소나무」와 이광수 시에 김대현이 곡을 붙인 「낙화암」을 즐겨 불렀다.
[생애를 낭송하다], 천년의시작,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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