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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랑

죽었다 살아난 남자 / 김완

작성자박제영|작성시간19.06.24|조회수177 목록 댓글 0

[소통의 월요시편지_662호]

 

죽었다 살아난 남자

-회진 일기4

 

김완

 

 

 

 

증례: 남자 45세

위험 인자: 흡연, 중증 음주(하루 소주 2~3병)

 


45세 젊은 남자가 아침 7시경 죽을 것 같은 흉통으로 장성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병력은 상기와 같은 위험 인자를 갖고 있었고, 생명 증후는 혈압, 맥박 정상에 의식도 명료했다 응급으로 검사한 심전도상 전벽 ST절 상승 급성심근경색증이 진단되어 3차 병원으로 후송 중 구급차 안에서 심정지가 발생했다 3차 병원까지 가지 못하고 거리상 가까운 내가 근무하는 병원 응급실로 심폐소생술을 하며 내원했다 의식이 불명이었고, 혈압과 맥박이 잘 잡히지 않았다 응급실 심전도 모니터는 지속적인 심실빈맥과 심실세동을 보였다 수차례 심실제세동기를 사용했다 곧바로 혈관조영술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서둘러 심페소생술을 하며 관상동맥조영술을 시행했다 응급 약물을 투여하며 관상동맥에 철선을 들이밀자 환자의 심장은 이내 동성 리듬을 회복했다 생명 증후도 되살아났다 주요 관상동맥은 모두 정상이었다 최종 진단은 과음 후 새벽녘 관동맥 경련에 의한 급성심근경색증으로 내려졌다

중환자실에서 흉벽에 남아 있는 수많은 심실제세동기 자국을 보며 환자에게 '술과 담배를 반드시 끊어야 한다'라고 말하니 환자는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답하지 않는다 오히려 '먹고살려면 장사해야 하니 오늘 중으로 나갈 수 있느냐'라고 되묻는다 오늘도 죽음과 삶을 경험한 환자에게서 문밖 세상의 절절한 고통을 배운다


 

- 『바닷속에는 별들이 산다』(천년의시작, 2019)


 

 

 

*

마종기 시인, 나해철 시인이 그렇듯 의사이면서 또한 치열하게 시를 쓰고 있는 김완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바닷속에는 별들이 산다』에서 한 편 띄웁니다.

 

「죽었다 살아난 남자」

 

무척 길지만 실은 간단합니다.

 

심장이 멈쳐 응급실에 실려온 죽을 뻔한 남자를 의사인 내가 겨우 살려냅니다.

그러고는 남자에게 의사로서 당연한 처방을 내리지요.

"술과 담배를 끊어야 한다. 안 그러면 정말 죽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 남자에게 나온 대답은 동문서답, 뜻밖의 말이지요.

"먹고살려면 장사해야 하니 오늘 중으로 나갈 수 있느냐."

그리고 의사인 나는 "죽음과 삶을 경험한 환자에게서 문밖 세상의 절절한 고통을 배운다" 고백합니다.

 

사내의 급성심근경색은 흡연과 중증 음주가 원인이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흡연과 중증 음주가 또한 '먹고살려면 장사해야 하는 세상의 고통'을 버텨내는 수단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 과연 저 사내에게 적절한 의사 처방은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좀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2019. 6. 24.

 

달아실출판사

편집장 박제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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