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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랑

재활용함 / 배영옥

작성자플로우|작성시간19.06.25|조회수102 목록 댓글 0

 

 

 그의 검은 손이 집어올리는 것은 어제의 네 윗도리가 아니라, 어제 그제의 네 구두가 아니라, 어제 그제 그끄저께의 네 속옷들이 아니라, 젖내 풍기는 젖먹이의 배냇저고리가 아니라, 네가 태어나기 이전 너와집 아궁이의 다 타버린 재가 아니라, 그가 가슴에 한아름 가득 안아 쌓아놓은 저것은, 어제의 그가 울컥울컥 게우던 피울음이 아니라, 어제 그제부터 갑자기 말라버린 피폐한 그의 육신이 아니라, 까마득한 옛날 신의 분노로 범람하던 붉은 강물이 아니라, 우리가 태어나 울고 웃고 다시 울음으로 몸을 부리고 돌아갈 어는 생의 아픈 상처가 아니라, 그가 몇 아름이나 반복해서 부려놓은 저것은, 트럭 위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저것은, 맞춤처럼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모든 기억의 추억의 토사물*은 어떤 낱말로도 재활용되지 않을 저것은,

 

* 최승자 시인의 시, 「雨日 풍경」에서 따옴.

 

 

[백날을 함께 살고 일생이 갔다], 문학동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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