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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랑

섬진강 달빛 차회-평사리 연가 / 이원규

작성자플로우|작성시간19.07.06|조회수113 목록 댓글 1

 

 

 섬진강의 동쪽 하동에서 떠오른 아침 햇살은 그대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희푸른 달빛은 내내 그대 영혼을 비춥니다 맨 처음 그대를 만나던 날, 평사리 청보리밭은 하루 종일 술렁이고, 생각만 해도 입속에 침이 고이는 그대가 나의 신맛이었을 때 온 동네 청매 홍매 백매는 피고 지고, 눈빛 마주치는 가지마다 시큼한 매실이 익어갔지요

 

 그러나 어인 일인지요 흐린 날 초저녁부터 휘이 퓌이, 마치 혼이 빠져나가듯 검은 숲에서 호랑지빠귀가 울었지요 귀를 막아도, 아무리 귀를 틀어막아도 그대가 나의 쓴맛이었을 때 형제봉 철쭉꽃밭은 붉은 상사병으로 더욱 번지고, 신열의 이부자리엔 쓰디쓴 씀바귀만 자랐지요

 

 그리하여 마침내 빨간 물앵두가 익어가던 날 그대가 나의 단맛, 나의 달콤한 맛이었을 때 내 온몸의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열려 신록의 산바람 강바람이 불고, 형제봉 활공장에선 패러글라이더들이 날아올랐지요 그러나 다시 그대가 나의 매운맛이었을 때 자꾸 입술이 부르트고 혓바늘이 돋아 평사리 무딤이 들녘에는 떼까마귀들이 울고 그대가 나의 짠맛, 짜디짠 맛이었을 때 눈물의 수위는 자꾸 높아져 하동포구에서부터 바닷물이 역류했지요

 

 그랬지요 이를 어쩌나 어쩌나  밤새 달빛 이슬 내리는 평사리 백사장을 걸으며 발자국으로 그대의 이름을 쓰다 보니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대가 나의 단 한 가지 맛이었을 때 그것은 사랑도 아니었으며, 그대가 나의 단 한 가지 맛이기를 강요했을 때 열정과 고통과 절망마저 한갓 미몽이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겠습니다 그대는 이미 나의 다섯 가지 맛, 신맛 쓴맛 단맛 매운맛 짠맛 그 모두였다는 것을! 그대는 나의 산고감신함 酸苦甘辛鹹, 그대는 나의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 그대는 마침내 나의 지수화풍地水火風, 지리산 수제 작설차요 하동 야생 녹차였다는 것을!

 

 

 밤마다 칠성봉에 달이 떠오르면 평사리 백사장에서 목욕재계하듯이 달빛 사우나를 하며, 그대 영혼의 맑고 푸른 피를 마십니다 오월 신록의 청람靑嵐, 푸른 산기운을 마십니다 그대를 마시며 기꺼이 사랑의 노예, 절절한 그리움의 하인이 됩니다.

 

 

[달빛을 깨물다], 천년의시작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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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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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길손 | 작성시간 19.07.07 섬진강에서 시를 쓰면 말이 길어지는 모양입니다. 달고 긴 말이 여기 남해까지 흘러들러오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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