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리 어느 시인의 집에서 밤늦도록 책을 읽는다.
글자들 사이에 자주 조그만 얼룩들이 생긴다.
얼룩이 점점 많아진다.
책에 모기 물린 자국이 가득하다.
글자들이 시원해지도록 책을 벅벅 긁어준다.
창마다 모기장이 있지만
모기장 보다 더 작은 날벌레들이
때론 모기장으로 들어오기엔 꽤 커 보이는 모기들이
손바닥에서 짓이겨지려고 달려든다.
팔뚝의 검은 반점이 자꾸 꾸물거리는 것 같아
손바닥으로 내리쳤더니
그대로 살 속에 박혀 점이 되어버린다.
여름밤의 글자들은 책 속에 갇혀 있는 걸 싫어해
앵앵거리며 머리 주위를 어지럽게 맴돈다.
너무 작아서
몸뚱이와 날개와 다리가 구분되지 않는
그저 날아다니는 점일 뿐인
눌러 터뜨리면 바로 색즉시공이 되어버라는 날벌레들처럼
글자들은 빛에 땀 냄새에 살갗에 자꾸 붙는다.
모기 물린 자국이 많은 눈과 귀 속으로
한밤의 시냇물이 들어오기도 한다.
시냇물에서 놀고 있는 크고 작은 물굽이들이
물굽이 속에서 지저귀는 온갖 명랑한 소리들이 흘러 들어온다.
밤공기를 한껏 들이마셔 맑고 우렁찬
풀벌레 소리도 들어온다.
이 모든 소리들이 스며들어
날개와 다리와 목청이 움직이는 소리들이 남김없이 스며들어
풍성해진 침묵도 들어온다.
혼자 있는 시간이 보약이 되어
약이 잘 듣지 않는 내 몸속으로 쑥쑥 흡수된다.
시골 밤공기에 취해 나는 빈둥거리는데
혼자 있는 시간이 나 대신 밤늦도록 책을 읽어주는
양수리 여름밤.
[갈라진다 갈라진다], 문학과지성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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