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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랑

토르소/이장욱

작성자也獸|작성시간19.06.28|조회수288 목록 댓글 1


 

시집을 읽으면서 표4의 글, 진은영 시인의 느낌이 내 느낌과 맞닿아서 그냥 내리 적는다.

시에 대해 말해야 할 순간에 왜 시인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지? 그의 시에 대해서는 덧붙일 것이 없으니까(사실 나도 그렇다). 어떤 좋은 그림들은 그것을 끼워넣을 모든 액자를 조잡하게 느껴지게 할 만큼이나 좋다(이를 넘어서는 찬사를 본 적이 없다). 그의 시는 이상한 용적을 지닌 단순한 그림 같다. (좀 길지만 이건 또 나의 느낌도 그러니까 이어간다) 그 단순함 속에는 사물의 소란과 침묵, 다정함과 서늘함, 유머나 죽음, 긍정과 부인, 우리가 세계에 대해 알기를 원하는 모든 복잡한 감정이 들어 있다. 그러니 그의 시에 대한 어떠한 장황한 찬사나 거창한 설명은 전부 군더더기. 우리는 따라 웃으며 잠시 그가 말하는 세계에 대해 참을 수 없는 호가을 느껴볼 뿐.

 

토르소

이장욱

 

손가락은 외로움을 위해 팔고

귀는 죄책감을 위해 팔았다.

코는 실망하지 않기 위해 팔았으며

흰 치아는 한 번에 한 개씩

오해를 위해 팔았다.

 

나는 습관이 없고

냉혈한의 표정이 없고

옷걸이에 걸리지도 않는다.

누가 나를 입을 수 있나.

악수를 하거나

이어달리기는?

 

나는 열심히 트랙을 달렸다.

검은 서류가방을 든 채 중요한 협상을 진행하고

밤의 쇼윈도우에 서서 물끄러미

당신을 바라보았다.

악수는 할 수 없겠지만

이미 정해진 자세로

긴 목과

굳은 어깨로

 

당신이 밤의 상점을 지나갔다

헤이,

내가 당신을 부르자 당신이 고개를 돌렸다.

캄캄하게 뚫린 당신의 눈동자에 내 얼굴이 비치는 순간,

 

아마도 우리는 언젠가

만난 적이 있다.

아마도 내가

당신의 그림자였던 적이,

당신이 나의 손과

발목

그리고 얼굴이었던 적이.

 

이장욱 시인의 시집 생년월일을 시사랑 모임에서 받았다. 읽는 내내 내 집이 좋았다. 쪼그리고 앉아서, 혹은 쿠션을 괴고 앉을 집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었다. (그간, 아들과 방 한 칸의 옥탑에서 4년을 산 적이 있다.) 이장욱의 모든 시집에 진은영 시인의 말이 들어맞는다고 본다.

시집 말미의 평론을 읽으면서 도움이 된 것도 있었지만 평론의 론에 의하면 이 시집은 이장욱 시인의 기획 시집이 되는 것이니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것은 한 줄기를 세워 한 면을 말한 것, 이겠다.

위 시 토르소는 가장 이장욱 시답지 않은 것일 수 있겠다. 나도 언젠가 토르소에 대해 시를 쓴 적이 있고, 드라이한 무엇을 좋아해서 그랬겠지만 이 시는 그냥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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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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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길을걷다가 | 작성시간 19.06.28 담담하게 적어내린 단어들이
    오히려 애절하고 먹먹하게 가슴에 내려앉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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