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두 시의 고향 나들이 [신효순]
전신주를 따라
시골길을 걷습니다
다소곳 날개 접은 황새
소나무 끝자락 사뿐
새색시처럼 섰구요
봉긋 솟은 노오란 민들레 논두렁에 앉아
금빛으로 반깁니다
스치는 풀잎들이
발목 아래 생채기를 그려놓구요
물큼한 논물 냄새 가만히 따라
산등성이 학교 넘어가던
그 고갯마루에
다 큰 발자취로 올랐습니다
산머리 해 쨍쨍한데
등굣길 아침 자욱한 어린 안개가
손에 잡히는 듯
이제 나는
구만리 같던 저 길도
한 뼘으로 모아지는 큰 사람이 되었습니다
- 바다를 모르는 사람과 바다에 갔다, 시인동네, 2017
* 어릴 때 다니던 국민학교는 운동장이 넓고 약간의 산도 있어서 큰 공간이었다.
운동장도 큰 것 같아 축구를 하려면 어린 발들이 종종 걸음으로 뛰어다녔으니.
하지만 어른이 되어 찾은 국민학교는 얼마나 작아졌는지.
코딱지만한 운동장에서 내가 축구를 했다고? 저렇게 쪼그만 데서.
칠십여명이 촘촘히 앉아 공부하던 교실은 이제 삼사십명 정도가 널직하게 쓰지만
그래도 교실은 작아보였다.
삼십분 걸어서 등교하던 학교 가는 길도 그땐 참 지루했는데 성큼 걸음으로 금방이다.
큰 사람이라니 좀 그렇고 어릴 때 큰 세상이 작아졌다는 의미일 게다.
작아진 세상에서 작게작게 살아야겠다.
마음만은 크낙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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