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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랑

백 미터 / 전윤호

작성자박제영|작성시간19.07.01|조회수138 목록 댓글 0

[소통의 월요시편지_663호]

 

백 미터

 

전윤호

 

 

 

 

마침내 말 한 번 걸어보려
검은 교복 입고 뒤쫓던
역전 다리 위 백 미터



어두운 공설운동장에서
한 시간 미리 도착하고도
딱 그만큼 달아나버린 정신줄



목사님이 신자가 아니면 사귀지 말래
저주처럼 붉은 십자가에
돌팔매질하던 거리



나이 먹고 친구로 만나도
같이 마시고 함께 취해도
저만치 앞서 걷는 그녀와의 사이



작심하고 달려도 평생 건너지 못한
아우라지 건너편 솔밭 같은
백 미터 그 지긋지긋한



부탁받은 척 흰 봉투 들고
망설이며 서 있는 장례식장 안내판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이별과의 거리


 

- 『정선』(달아실, 2019)


 

 

 

*

전윤호 시인의 신작 시집, 『정선』이 나왔습니다. 정선을 배경으로 했다지만 실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 옛 것과 옛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절절한 시집입니다. 시집에서 한 편 띄웁니다.

 

「백 미터」

 

끝내 이루지 못한 고향 가시내와의 첫사랑 얘기입니다.

고향을 떠나 서로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 낳고 잘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겠지요.

이제 첫사랑 대신 친구로 만나자 했지만, 친구로 지내기에도 첫사랑이 빚은 어색한 거리가 두 사람에게는 존재했겠지요.

첫사랑은 얼마나 먼 거리인가요.

그러던 첫사랑 그 가시내가 죽었겠지요.

조문 가야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 끝에 부탁받은 부의금 전달하러 온 척하며 막상 장례식장에 왔지만

그 가시내 영정 앞에서 차마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이겠지요.

이제 정말 영영 이별인가 싶다가

아직도 그 가시내 얼굴이 생생하니 죽음이 믿기지 않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구나. 이건 첫사랑 그 가시내 얘기가 아니구나. 시인이 떠나온 고향 정선에 대한 이야기구나."

 

딱 '백 미터'

고향이 지척인데, 고향엔 옛사람들 여전한데,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심정을 그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 말입니다.

고향은 어쩌면 첫사랑 그 가시내를 무척 닮았구나, 그런 생각 말입니다.

 

 

추신. 아참 이번주 금요일(7월 5일) 저녁 7시 춘천 교대 앞 카페 '예부룩'에서  정선 시집 출판기념회가 열립니다. 시간 되시는 분들은 들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회비는 단돈 이만냥이랍니다. 시인의 친필사인 시집과 맥주값이니 손해보는 장사는 아닐 겁니다.^^

 

 

2019. 7. 1.

 

달아실출판사

편집장 박제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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