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진에서 얼굴의 해석 [송재학]
얼굴은 원래 복잡했지만 바늘구멍의 오랜 노출을 거
치면서 쉽고 단순해졌다 접근이 쉬운 이목구비만 유곽의
네온처럼 벽에 걸렸다
하지만 폴랑드르 화가들처럼 나 역시 얼굴의 복잡한
심리학에 마음이 끌린다 데스마스크를 묘사한 초상화에
서 코발트색 염료가 주검을 숨긴 것처럼 얼굴에는 오글
오글 저녁이 모여 있다
찡그린 눈썹 때문에 저 낯선 소묘가 내 얼굴인지 의심
되는 순간, 얼굴의 심리는 흐릿하지만 풍경과 멀어진 흑
백이란 점에서 안도감이 생긴다 프레임으로부터 소외된
기하학은 희게 날아가버렸다 얼굴은 바늘구멍 너머 앙금
부터 재해석되었다 저건 사람으로부터 추출된 근대의 표
정이 아니라 원시 동굴의 벽화처럼 정령에 가깝다
바늘구멍을 통과한 얼굴의 기억을 더듬으면 짐승과 사
람이 같은 해골을 사용하고 있다 눈동자가 있어야 할 자
리에 별과 어둠이 있는 것처럼
- 슬프다 풀 끗혜 이슬, 문학과지성사, 2019
* 얼은 정신이고 골은 살아온 삶의 흔적이니 얼과 골이 모여 얼굴인지라
얼굴을 보면 짐승이 되었는지 사람이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살아온 흔적이 때로는 부끄러워 그 흔적을 남기기 싫어
가끔 사진찍히기를 거부하기도 한다.
내가 누구를 찍을 때도 찍지 말라 하면 뒷모습만 찍어준다.
하지만 그 뒷모습에도 얼과 골은 있으니 그게 그거다.
아마도 누구게나 눈동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별과 어둠이 있을 테다.
친구가 사십년 지난 지금의 친구모습을 사진으로 보내왔다.
열명중에 한두명은 알겠는데 나머지는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별과 어둠이 아른거릴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