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밀린 시집이 많다. 일단 쓰기 전에, 일단 읽어야 하는데, 읽지 않으니 쓰지도 않게 된다.
밀린 숙제 하는 기분으로, 선물 받은 시집부터, 그 급한 것부터 읽는다.
어떤 시집은 강한 기분을 갖게 하기도 한다. 그런 시집은 갈수록 그 기분이 희석된다. 어떤 시집은 콤플렉스를 느끼게 하기도 한다. 미워서 더 읽을 수도 있다. 나와 비슷한 투의, 여로모로 비슷한 투의 시집은 읽기가 꺼려진다. 읽기조차 꺼려진다. 내 한심이 그 시집의 한심 같아 보이기도 한다.
임지은의 시집은 소보로빵 같다. 앙꼬가 없고 또 빵 위에 도도록함이 있다는 점에서, 그 도도록함이 다 다르다는 점에서, 그 드라이함이 길다. 긴데 밋밋하다. 그러니까, 분명한 단팥빵을 집어든 사람이 있고, 소보로빵을 집어든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 빵을 사 봐서 알지만, 그건 나만 그럴 수도 있지만 소보로빵을 먹으면서 후회하지만 그 맛이 오래 남는다.
벤딩 엄마
임지은
1
얼마나 늘어나려고 해요? 엄마
다리는 두 개로 여전한데
이름은 불릴 일 없어 뭉개져버렸는데
욕실에서 깨진 타일을 쓸어 담는 엄마가
화장지로 대화를 이어 붙이고 있다
지겨워 못 살아, 저런 것도 자식이라고 한 칸
나니까 참고 살지 두 칸
그러니까 참지 말고, 엄마 세 칸
대화는 습기에 약하고
다음 칸으로 가기 전에 뚝뚝 끊어진다
2
엄마는 같은 가게에 간다
입는 옷만 입는다
아는 사람만 만난다
어제와 같은 반찬을 만든다
최대한 오늘을 어제처럼 산다
엄마는 어제의 총집한이다
3
수도꼭지를 틀자
엄마가 흥건해진다
그만 울어요 엄마
창문을 열자
엄마가 시원해진다
빨아놓은 바지가 마르지 않았다
고무줄로 된 바지를 입고
흘러내리는 생활을 추켜올리는 엄마
엄마, 그거 내 바지야
어쩐지 바지는 엄마한테 너무 길고
엄마는 잠든 가위로 나를 자른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깨긋하게
책상 위 좀 치울래? 딸
엄마, 이거 내 꿈속이야
엄마는 잘못 빨아서
줄어든 스웨터를 입고
보풀처럼 나를 똑똑 떼어낸다
엄마에겐 내가 너무 많아서
이 꿈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그러니까, 이 시의 엄마는 나 같다. 아들이 나에게 하는 말 같다. 내가 아들에게 하는 말 같다. 현실인데 시이고 시인데 현실이다. 남잔데 여자고 여잔데 남자다. 내가 그런다. ‘책상 좀 치울래? 아들’ 그러다가 햇볕이 들면 ‘식탁 두고 뭐하는 짓이야?’ 하다가 꿈속에서는 ‘치우기 싫으면 처먹지도 마!’ 그런다.
무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