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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랑

벤딩 엄마/임지은

작성자也獸|작성시간19.07.03|조회수279 목록 댓글 1



그간 밀린 시집이 많다. 일단 쓰기 전에, 일단 읽어야 하는데, 읽지 않으니 쓰지도 않게 된다.

밀린 숙제 하는 기분으로, 선물 받은 시집부터, 그 급한 것부터 읽는다.

어떤 시집은 강한 기분을 갖게 하기도 한다. 그런 시집은 갈수록 그 기분이 희석된다. 어떤 시집은 콤플렉스를 느끼게 하기도 한다. 미워서 더 읽을 수도 있다. 나와 비슷한 투의, 여로모로 비슷한 투의 시집은 읽기가 꺼려진다. 읽기조차 꺼려진다. 내 한심이 그 시집의 한심 같아 보이기도 한다.

임지은의 시집은 소보로빵 같다. 앙꼬가 없고 또 빵 위에 도도록함이 있다는 점에서, 그 도도록함이 다 다르다는 점에서, 그 드라이함이 길다. 긴데 밋밋하다. 그러니까, 분명한 단팥빵을 집어든 사람이 있고, 소보로빵을 집어든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 빵을 사 봐서 알지만, 그건 나만 그럴 수도 있지만 소보로빵을 먹으면서 후회하지만 그 맛이 오래 남는다.

 

벤딩 엄마

임지은

 

 

1

 

얼마나 늘어나려고 해요? 엄마

 

다리는 두 개로 여전한데

 

이름은 불릴 일 없어 뭉개져버렸는데

 

욕실에서 깨진 타일을 쓸어 담는 엄마가

 

화장지로 대화를 이어 붙이고 있다

 

지겨워 못 살아, 저런 것도 자식이라고 한 칸

 

나니까 참고 살지 두 칸

 

그러니까 참지 말고, 엄마 세 칸

 

대화는 습기에 약하고

 

다음 칸으로 가기 전에 뚝뚝 끊어진다

 

 

2

 

엄마는 같은 가게에 간다

입는 옷만 입는다

아는 사람만 만난다

어제와 같은 반찬을 만든다

 

최대한 오늘을 어제처럼 산다

엄마는 어제의 총집한이다

 

 

3

 

수도꼭지를 틀자

엄마가 흥건해진다

 

그만 울어요 엄마

 

창문을 열자

엄마가 시원해진다

 

빨아놓은 바지가 마르지 않았다

 

고무줄로 된 바지를 입고

흘러내리는 생활을 추켜올리는 엄마

 

엄마, 그거 내 바지야

 

어쩐지 바지는 엄마한테 너무 길고

엄마는 잠든 가위로 나를 자른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깨긋하게

책상 위 좀 치울래?

엄마, 이거 내 꿈속이야

 

엄마는 잘못 빨아서

줄어든 스웨터를 입고

 

보풀처럼 나를 똑똑 떼어낸다

 

엄마에겐 내가 너무 많아서

이 꿈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그러니까, 이 시의 엄마는 나 같다. 아들이 나에게 하는 말 같다. 내가 아들에게 하는 말 같다. 현실인데 시이고 시인데 현실이다. 남잔데 여자고 여잔데 남자다. 내가 그런다. ‘책상 좀 치울래? 아들그러다가 햇볕이 들면 식탁 두고 뭐하는 짓이야?’ 하다가 꿈속에서는 치우기 싫으면 처먹지도 마!’ 그런다.

무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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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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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JOOFE | 작성시간 19.07.04 엄마는 어제의 총집합이다.
    깨끗하게/ 책상 위 좀 치울래? 딸

    시집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빨간펜으로 써보았습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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