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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마피아]미국 마피아 - 10. 토마스 듀이의 마피아 수사와 덧치 슐츠의 최후

작성자푸른 장미|작성시간13.11.20|조회수2,246 목록 댓글 2

이 무렵 갱들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한 명의 사법관리가 있었으니, 미시간 주 출신의 변호사로 나중에 미국의 대통령 후보로까지 지명되는 토마스 듀이가 바로 그 사람이다. 토마스 듀이는 미시간 대학과 콜롬비아 로스쿨을 졸업한 후, 뉴욕으로 건너와서 당시 유명한 변호사이던 죠지 메달리(George Z. Medalie)의 로펌에 취직하여 앞날이 기대되는 젊은 변호사의 한 명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31년에 대통령 허버트 후버에 의하여 죠지 메달리가 뉴욕을 포함한 미국의 남부지방을 담당하는 연방 검사로 임명되자, 듀이는 메달리에 의하여 29세의 젊은 나이에 연방 검사의 검사보로 지명 받게 되고, 이후 그에게는 정치적인 야심도 싹트게 된다.

조지 메달리

 

토마스 듀이

 

보수적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이른 나이에 공화당원으로 가입한 토마스 듀이는 민주당의 태머니 홀의 부패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그러나 사실은 이와 같은 정치 세력의 부패는 비단 민주당에만 국한되어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연방 검사보로서 듀이는 1931년 에 있었던 시카고의 범죄 황제, 알 카포네의 탈세 혐의에 대한 재판 케이스에 개입하기도 하여 조직범죄단의 수사에 대한 경험을 쌓은 다음, 다시 뉴욕으로 눈을 돌려 뉴욕의 갱들에 대한 수사 자료를 모으기 시작하였다. 듀이는 자신의 수사 실적이 자기 앞날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1933, 이제는 자리에서 물러난 죠지 메달리 대신에 연방 검사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토마스 듀이에 의하여 뉴욕의 갱들이 기소되기 시작하였다.

1933, 토마스 듀이에 의하여 탈세 혐의로 기소된 사람은 사우스 브롱크스의 덧치 슐츠였다. 덧치 슐츠는 그 본명을 아더 플레겐하이머라고 하는 유태계 갱으로 루이스 부챌터, 찰스 루치아노와 함께 당시 일반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갱 중의 한 명이었다. 사실 슐츠는 그의 부모 중 한쪽이 오스트리아 인이었기 때문에 순수 유태계 갱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덧치 슐츠는 뉴욕의 사우스 브롱크스를 중심으로 맨해튼의 어퍼 웨스트 사이드와 할렘까지를 자기 구역으로 삼고 있었으며, 밀주사업은 물론 앰버시 클럽(Embassy Club) 등 고급 사교장의 경영까지도 하고 있는 유력한 뉴욕 갱의 한 사람으로, 핸섬한 외모와 좋은 매너를 가지고 있었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그의 부하들까지도 놀라게 할 만큼 잔인한 성격도 또한 함께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덧치 슐츠

 

이때 토마스 듀이는 슐츠와는 다른 케이스로, 역시 유명한 유태계 갱 중의 한 명이었던 웩시 고든(Waxey Gordon, 원래 이름은 어빙 웩슬러)에게 10년형의 유죄 판결을 받도록 이끌어내었기 때문에 언론에는 귀신 잡는 검사로 알려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전 세대 갱인 웩시 고든의 경우와는 많이 다르게 슐츠는 1년 이상이나 자유스럽게 뉴욕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업과 활동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이는 뉴욕의 일선 사법 공무원들의 거의 모두가 신디케이트의 돈에 의하여 매수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웩시 고든

 

그러나 1934년이 되자 상황은 달라져 덧치 슐츠의 기소 건을 둘러싼 환경은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헨리 모겐소(Henry Morgenthau, 1934년부터 1945년까지 재무장관을 역임) 재무장관이 직접 나서서 사건을 챙기기 시작했으며, 재무장관은 FBI 국장인 에드거 후버(John Edgar Hoover)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재무장관은 슐츠 건에 대하여 뉴욕 시장과 직접 전화 통화를 나누기도 하였다. 법무장관이 아니라 재무장관? 범법자를 잡아들이는 일에 법무장관이 아닌 재무장관이 앞에 나선 것은 혹시 세금 수입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시카고의 알 카포네의 경우, 수십 건 이상의 살인을 직접 저지르고 또 부하들에게 명령하였지만, 정작 그를 감옥에 집어넣은 것은 바로 이번의 덧치 슐츠 케이스와 같은 탈세 혐의였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국세청의 세무조사는 신디케이트에게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으며, 마피아들이 그들의 사업을 하나 하나 합법화 시키고 있는 제일 큰 이유도 바로 그 점에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슐츠는 FBI에 의하여 공공의 적(Public Enemy) 1호로 지명되었다.

헨리 모겐소

 

존 에드거 후버

 

FBI가 한번 공공의 적으로 지명하면 범 국가적인 행정력을 동원하여 범인을 체포하거나 사살할 때까지 수사를 계속하는 것이 보통이었으므로 덧치 슐츠라 할지라도 두려웠을 것이다. 그 동안 FBI에 의하여 공공의 적으로 지목된 갱은 주로 은행 강도 등, 무장 강도였으나 이번에 처음으로 조직범죄단의 보스가 공공의 적으로 지명된 것이었다. 몇 년 전, 시카고의 알 카포네가 공공의 적 제1호로 리스트에 오른 적이 있었으나 그때의 리스트는 FBI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시카고 범죄 대책 위원회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과거에 FBI로부터 공공의 적 제1호로 지명되었던 존 딜린저(John Dillinger) 등이 어떤 최후를 마쳤는지 익히 알고 있었던 슐츠는 술수를 써, 뉴욕 시가 아닌 인근의 작은 도시 알바니에서 당국에 자수를 한다. 당시 뉴욕은 새 시장으로 피오렐로 라구아르디아(Fiorello H. LaGuardia)가 당선되어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나날이 시정을 개혁해가는 중에 있었으므로 만일 그가 뉴욕 시에서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다면 유죄 판결이 내려질 것이 거의 확실했기 때문이다.

사살된 존 딜린저

 

피오렐로 라구아르디아

슐츠는 자기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현지 주민들에게 환심을 사기 위하여 부하들과 함께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배심원들에게도 손을 써두어, 결국 19354월에 시라큐스에서 열린 1차 재판에서는 배심원단의 의견이 반반으로 갈라지는 심리 무효로 판결에 이르지 못한다. 그리고 이어 멀론 시에서 열린 2차 재판에서는 배심원단에 의하여 슐츠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진다. 슐츠는 다시 한번 뉴욕의 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하게 되었으며, 알 카포네조차도 이기지 못한 당국과의 대결을 승리로 이끈 슐츠의 기고만장함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1935년 뉴욕 법정에서 승소한 후 의기양양한 덧치 슐츠

 

영화 '빌리 배스게이트'에는 덧치 슐츠(알 파치노)가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재판이 열리는 시골 마을의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 돈을 뿌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토마스 듀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듀이는 웩시 고든 사건의 승소 후 대통령 루즈벨트에 의하여 원래의 자리에서 물러난 뒤 1935년에는 뉴욕 카운티의 특별 검사로 임명되어 있었고 그는 후에 뉴욕 주의 주지사가 되려는 정치적 야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실적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

듀이는 이번에는 슐츠의 빈센트 콜 살인 혐의에 초점을 맞추었다. 빈센트 콜은 지난 193227, 자기 집 앞의 약국에 있는 공중전화 박스에서 전화를 걸고 있던 중 기관단총에 의하여 피살되었는데 이 사건을 그가 해결한다면 사람들에게 잊기 힘든 뚜렷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을 터였다. 그래서 듀이가 얼마나 슐츠를 몰아붙였던지 참다 못한 슐츠는 듀이를 없애버릴 결심을 하고 만다.

살해된 빈센트 콜의 시체를 경찰들이 운반하고 있다.

 

당시 토마스 듀이가 관심을 가지고 있던 갱 중에는 덧치 슐츠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갈취가 전문인 루이스 부챌터와, 지하세계의 황제로 일컬어지고 있는 찰스 루치아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듀이를 없애는 일은 신디케이트의 멤버 모두로부터 찬성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슐츠는 루치아노, 랜스키, 코스텔로 등의 보스들에게 토마스 듀이의 히트를 설득하려고 하였다.

덧치 슐츠가 특별 검사인 토마스 듀이의 목숨을 노린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신디케이트의 멤버들은 즉시 긴급 위원회를 소집한다. 말단의 순찰경관 한 명이 갱단에 의하여 피살되어도 일이 적잖이 시끄러워질 텐데 뉴욕 카운티의 특별 검사를 살해한다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공직에 있는 사람들의 단결력이란 사실 대단한 것이 아닌가? 이들은 심각한 토의 끝에 현직 검사인 듀이가 갱으로부터 피살되는 일이 벌어지면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달리 경찰, FBI, 재무성, 국세청 등 전 미국의 행정력이 그들을 적으로 삼아 승부를 걸어올 것이 틀림 없으므로 상황을 그렇게 만들기보다는 슐츠 한 사람이 없어지는 편이 훨씬 낫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리하여 회사가 슐츠의 히트를 맡게 되었다.

19351023, 회사 소속의 엠마누엘 와이스(Emmpanuel Weiss, 닉네임은 멘디)와 찰스 워크맨(Charles Workman, 닉네임은 벌레), 그리고 또 한 명은 뉴저지의 느워크 시에 있는 레스토랑, 팰리스 찹 하우스(Palace Chop House)에서 부하인 에이브 랜도우(Abraham Landau), 버나드 로젠크란츠(Bernard Rosenkrantz)와 함께 식사를 하며 조직의 재정 담당인 오토 베르만(Otto Berman, 닉네임은 아바다바 베르만)으로부터 사업보고를 받고 있던 슐츠에게 총격을 가하여 임무를 완수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덧치 슐츠는 화장실에 총에 맞은 후 자기가 앉았던 좌석까지 겨우 몸을 끌고 온 다음, 마지막으로 몇 마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덧치 슐츠와 함께 피격되어 사망한 에이브 랜도우

 

역시 덧치 슐츠와 운명을 같이한 버나드 로젠크란츠

 

덧치 슐츠의 재정 고문으로 저승길까지 동행한 오토 베르만

레스토랑에서 피살된 덧치 슐츠

 

 

사망한 덧치 슐츠

 

일전에 있었던 오토 베르만의 진술에 의하면 당시 덧치 슐츠가 관리하던 도박사업의 규모는 수백만 달러에 달하였고, 저소득층을 주로 상대하는 숫자 도박 하나만 가지고도 매주 50만 달러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슐츠가 죽은 후 신디케이트의 다른 회원들이 슐츠의 사업을 나누어 가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당시 회사의 일 처리는 아주 잘 짜여진 팀워크에 의하여 매우 조직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한 히트 팀은 히트맨(Hitmen), 핑거맨(Fingermen), 휠맨(Wheelmean)과 마지막 뒤처리를 담당한 이베포레이터(Evaporators) 등 대략 네 그룹으로 구성되어 각각의 임무를 잠깐 살펴보면, 히트맨은 실제의 살인을 담당하는 사람으로 총류뿐 아니라 칼, 얼음 송곳, 망치 등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그 방면의 전문가이고, 핑거맨은 목표물의 평소 습관 증 정보를 모아서 작전이 매끄럽게 실행될 수 있도록 전체적인 플롯을 짜는 사람으로 한 팀의 두뇌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휠맨은 운전사를 뜻하고, 이베포레이터는 작전에 사용되었던 흉기나 차량 등을 감쪽같이 사라지게 만드는 뒤처리 담당자를 말한다.

회사의 행동 대원은 주로 뉴욕 동부의 윌리엄스버그, 브라운스빌 등 브루클린 지역 출신자들이었다. 이들은 너무나도 거칠고 예측이 불가능한 자들로서 노련한 보스급들조차도 이들과는 별로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흉포한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행동대원들로는 루이스 카포네(Louis Capone), 프랭크 아반단도(Frank Abbandando), 프랭크 카르보(Frank Carbo), 빈센트 망가노의 동생인 필립 망가노(Philip Mangano), 비토 규리노(Vito Gurino), 해리 스트라우스(Harry Strauss), 해리 마요네(Harry Maione), 마틴 골드스타인(Martin Goldstein), 알버트 타넨바움(Albert Tannenbaum), 에이브 레빈(Abe Levine), 엠마누엘 와이스, 에이브 릴리스 등이 있는데 이들은 이름만 대면 울던 아이도 울음을 뚝 그칠 정도로 당시 악명을 날리던 쟁쟁한 킬러들이었다. 이들은 각자의 실력에 따라 주급 100달러 내지 250달러를 받기로 하고 회사에 고용되어 있었으며, 당시는 바로 그 유명한 대공황의 시기로 일용 근로자의 일당이 하루에 1달러 정도였고 그만한 일거리마저 갖지 못한 실업자가 부지기수였다는 것을 고려해볼 때 이들의 급료가 어느 만큼의 수준이었는지는 쉽게 짐작해볼 수 있다.

루이스 카포네

 

프랭크 아반단도

 

프랭크 카르보

 

왼쪽부터 해리 스트라우스, 해리 마요네, 프랭크 아반단도

 

비토 규리노

 

마틴 골드스타인

 

알버트 타넨바움

 

에이브 레빈

 

엠마누엘 와이스(오른쪽). 왼쪽은 살인주식회사의 행동대원 루이스 카포네

 

에이브 릴리스. 살인주식회사의 행동대장 격이었던 사람이다.

 

회사의 총책임자는 위원회의 의장인 찰스 루치아노가 맡고 있었으며, 실무 책임자는 애초에 그것의 존재를 주장했던 루이스 부챌터가, 그리고 나중에 망가노 패밀리의 언더보스인 알버트 아나스타샤가 회사의 언더보스를 겸임하고 있었다. 회사의 본부는 브루클린의 동쪽, 리보니아 거리와 새러토가 거리가 교차하는 곳에 위치한 미드나잇 로즈(Midnight Rose's Candy Store)라는 캔디 가게였고, 이곳에는 회사원들이 돌아가며 24시간 상주하고 있었다.

미드나잇 로즈. 겉으로는 평범한 사탕 가게였지만 이곳이 바로 살인주식회사의 본부였다.

 

누군가를 없애고자 하는 보스는 루치아노에게 상담을 청하였고, 루치아노는 다시 그 안건을 가지고 프랭크 코스텔로, 마이어 랜스키와 의견을 교환한 다음 특별한 반대가 없으면 루이스 부챌터에게 명령을 내렸으며, 부챌터는 알버트 아나스타샤와 상의하여 이번 일을 처리하는 데 최적임자가 누구인가를 결정한 후 미드나잇 로즈에 전화를 걸어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살인주식회사가 해체될 때까지 회사에 의하여 처형된 사람의 수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500명에서 800명 정도 또는 그 이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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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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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2Pac 작성시간 13.11.21 선입견 때문인가 회사 멤버들 얼굴이 흉악하게 생겼네요
  • 작성자Ir.Focus 작성시간 13.11.21 계속 흥미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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