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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경명상기도

[명상]명상과 치유-윤종모성공회대학교 교수

작성자조길제|작성시간07.07.14|조회수9 목록 댓글 0

원불교사상연구 학술대회 2

명상과 치유

윤종모 교수 (성공회대학교)

명상은 치유의 효과가 있다. 심리학자들은, 열등감, 우울증, 강박증, 공포증, 집착, 중독증, 적개심, 파괴적 인간관계, 실존적 허무감 등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심리적, 정서적, 영적 장애는 상처의 결과요, 성장의 결여라고 생각하고 있다.

명상은 인간의 이런 증상들을 치유하는 데 가장 효과있는 도구이다. 효과있는 치유의 도구로서의 명상을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명상은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서 치유시키는 기능이 있다. 사변적인 명상의 특징은 깨달음을 얻는 데 있다. 바른 깨달음은 사물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지혜롭게 보는 눈을 얻게 해 주는데, 이것은 치유의 효과가 있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매튜라는 청년은 18세에 암에 걸려서 20세에 죽은 청년이다. 그는 처음에는 왜 젊은 내가 암에 걸려야 하느냐고 신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면서 심지어는 자신을 치료하는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옆의 환자들에게도 횡포를 부리곤 했다. 그는 어느날 입을 닫고 오랜 침묵 끝에 다음과 같은 詩를 썼다.

태양이 없으면 우리는 무지개를 가질 수 없지. 비가 없어도 우리는 무지개를 가질 수 없지.

아, 태양과 비, 웃음과 고통, 그것들이 함께 어울려 무지개를 만드는 거지.

이 시에서 무지개는 인생을 의미한다. 태양은 삶의 긍정적이고 행복한 면을 말하는 것이고, 비는 삶의 어둡고 슬픈 면을 말한다. 그런데 이 시는 인생은 그런 밝고 행복한 면과 어둡고 슬픈 면이 섞여 이루어진 것이니, 비록 어둡고 슬픈 상황이 닥칠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초월하여 고고한 태도를 유지하며 살아야겠다는 깨달음을 담은 시인 것이다.

매튜는 비록 자신의 병을 치료할 수는 없었지만, 인생은 행복과 불행이 섞여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치유를 경험했다. 그래서 그는 마음의 평화를 얻고 주위 사람들에게 봉사하며 살다가 이 시를 쓴 후 10개월 후에 죽었다.

득도한다든지, 해탈한다든지 하는 것도 좀더 깊은 마음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일 뿐, 형태상으로는 이 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명상 가운데에 어떤 위대한 존재를 만나고, 그의 사랑과 위로 혹은 용기를 얻으면 치유를 경험한다. 이것은 주로 종교인에게 해당되는 것으로서 자기가 믿는 신의 사랑과 위로를 경험함으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역경을 극복하는 힘과 용기를 얻는 것이다.

이것은 심리학적으로도 설명이 된다. 어떤 위대한 존재가 주는 사랑과 위로가 가슴에 밀려들어오면 자신의 마음 속에 있던 상처와 염려, 걱정 등이 상대적으로 작아지면서 희석되어 약해지거나 사라지는 것이다.

셋째, 명상은 생리적 치유 효과가 있다. 심호흡과 함께 고요하고 평화로운 명상의 생리적 효과는 알파파 효과이다. 뇌의 알파파 상태에서는 엔돌핀 계통의 많은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특히 베타 엔돌핀은 T-임파구를 강화시켜 면역력을 높힌다.

현대인의 대부분의 성인병은 자율신경의 실조증이라고 한다. 자율신경은 교감신경과 부교감 신경으로 되어 있다. 교감신경은 흥분(긴장) 작용을 한다. 심장을 예로 든다면, 심장을 흥분시키고, 혈관을 수축시키며, 혈압을 높이는 작용을 한다. 부교감신경은 억제(이완) 작용을 한다. 심장을 진정시키고, 혈관을 확장시키며, 혈압을 낮추는 작용을 한다.

교감신경의 과잉작용은 아드레날린 등의 호르몬을 다량 분비시켜서 체내에 독소가 생성되고 호르몬의 조화가 깨지며, 체내의 각 기관이 피로하여 소모되고 그 결과 노이로제 및 각종 만성병(성인병)이 발생하는 한 요인이 되는 것이다.

이런 교감신경을 억제하는 힘을 행사하는 것은 부교감신경인데, 부교감신경의 활성화는 알파파의 상태를 형성하는 명상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것이 오늘날 통합치료를 지향하는 의사들이 명상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일 것이다.오늘날의 명상은 더 이상 종교인이나 수행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명상은 이제 복잡한 산업사회 속에서, 경쟁과 갈등을 피할 수 없는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생활명상이라는 용어가 생기고 거기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그러나 깨달음은 버려둔 채 어떤 경향이나 성향만을 쫓는 인스턴트 명상은 조심할 일이다.

종교인도 이제는 배타적이고 근본주의적인 태도를 버리고 마음을 닦는 영성 지향적인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본다. 여기에 명상하는 종교인들의 시대적 요청과 책임이 있다. 명상은 행복한 삶, 건강한 삶을 위한 필요충분 조건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위 논문은 27일 열린 원불교개교백주년 기획, 원불교사상연구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명상과 자유’를 요약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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